쌀을 팔아 먹은 매농노

  • 입력 2014.08.23 21:05
  • 수정 2014.08.23 21:52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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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교수

나라를 팔아먹은 자는 매국노이고, 농업을 팔아먹은 자는 매농노라 할 수 있다. 2014년은 매농노들이 우리의 쌀을 팔아먹은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반만년 동안 민족과 함께 해온 쌀을 해외 자본과 시장에 전면 개방한다는 것은 아무리 시대적 여건을 감안한다하더라도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는 사건이다. 민족의 뿌리요 문화의 기반인 쌀을 온갖 핑계와 미사여구로 포장하여 개방한다는 것은 외세의 침략이라는 물리적인 폭력보다도 거대한 폭거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본질적 문제인식과 대책도 없이 쌀 시장을 개방한 것은 역사의 오류로 기록될 것이다.

자유무역과 성장만이 능사인 양 온 사회 전체가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성장은 지체되어 있고 소득 계층간, 세대간 갈등은 커져만 가고 있다. 위정자들의 도덕성이나 청렴성은 땅에 떨어진지 오래되었고, 대기업은 수십조원의 돈을 곡간에 쌓아놓고 있으나 대다수의 국민들 특히 저소득층과 중소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밥 벌어먹고 살기가 어렵다. 청년일자리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고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세계화 시대의 농산물 시장개방은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선진 농산물 수출국과 농업관련 다국적기업들의 거짓된 명분은 보기 좋게 무너진지 오래되었다. WTO체제가 출범한지 20여년이 지난 현재 인류의 기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국가간·개인간 소득격차는 양극화로 고착화 되어 가고 있다. 선진국은 자국의 기업이나 국민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있고 인류 공영의 가치는 사라진지 오래다. 70억 세계인구 중 제3세계의 인류 50억명 이상은 식량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농산물의 국제시장은 다국적 기업이 무역과 유통을 장악하고 있어 매우 불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식량주권이 필요한 이유이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고 식량주권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음에도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오로지 성장이요, 개방이요, 자유화라는 천박한 인식에 함몰되어 있다. 우리도 농산물을 수출하면 된다거나, 농업을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수 있다거나, 농관련산업을 육성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거나, 일등하는 엘리트 농민을 육성하면 얼마든지 개방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외치는 자들은 십중팔구 간신배이거나 농업을 팔아먹을 자들이다. 되지도 않을 것을 되는 것처럼 호도하여 일신의 출세만을 추구하는 염치없는 자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저들에게서 쌀 농업이 갖는 민족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대하기란 애시당초 어렵고,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류공동의 선과 같은 진리는 이들의 눈밖에 난지 오래되었다. 오로지 약육강식의 파괴적 가치에 불과한 자본과 기업의 논리만을 조아려 대는 자들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쌀 시장을 이렇게 열 수 있는가. 누구의 동의를 받았는가. 국민의 동의를 받았는가, 농민단체를 당근으로 분열시켜 한쪽의 동의를 받았으니 되었다고 판단하는가. 쌀 전문가들의 동의를 받았으니 되었다고 판단하는가. 쌀 전문가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깜작 놀랄 지경이다. 논문 한 편, 현장 조사 한번 한 적이 없는 자들이 쌀 전문가인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쌀 대책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20여년 동안 뭐하다가 쌀 개방을 선언해 놓고 부랴부랴 쌀발전협의회인가 하는 것을 만들어 대책을 만든다고 호들갑인가.

먼 훗날 우리의 쌀 농업이 축소되고 사라져 명맥만 유지하게 될 가능성은 이제 매우 높아 졌다. 쌀 농업을 유지하고 후손에 물려줄 생각보다는 그저 규모가 크고 농사 짓기 편리한 논들만 유지하겠다는 정책이 지속되는 한 불을 보듯 뻔하다.

쌀시장을 아무런 대책이나 철학 없이 개방한 것은 매농노의 짓이며 돈 몇푼 더 벌자고 자식을 팔아넘긴 비정한 부모와 다를 것이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바란다. 누가 매농노인지는 역사가 판별할 것이고, 이들은 역사에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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