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31회

  • 입력 2014.08.23 07:41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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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던 임상호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때까지 선택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이 친구야, 여기 정형 기억 안나? 기차 안에서 만났던.”

그제야 임상호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선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전히 귀티가 흐르는 허여멀쑥한 얼굴이었지만 두 해가 채 안 된 사이에 어딘지 많이 변한 듯했다. 그에 비하면 김재열은 처음 만났던 모습 그대로였다.

“다시 만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만나게 됩니다, 그려. 그간 잘 지냈소?”

선택이 마주 손을 잡으며 묻자 상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 이놈이 부잣집 도련님 티를 제대로 내고 있답니다. 집에서는 귀한 맏아들한테 공부만 하라고 다 뒷바라지를 해주는데 공부는 아예 작파하고 문학놀음에 빠졌지 뭡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재열의 어투에는 장난기가 묻어 있고 임상호 역시 피식 웃으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여전히 두 사람의 우정이 두텁게 느껴졌다.

“선택 형이 여기 어쩐 일이오? 글고 그 때 지원한 대로 중앙고에 입학을 한 것이오? 일단 들어오지요.”


단 한 번 만나 몇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도 김재열이나 임상호 모두 선택을 오랜 지기라도 되는 양 반가워했다. 이런 환대에 익숙하지 않은 선택 역시 두 사람이 가깝게 느껴졌다. 임상호의 방은 대낮인데도 전깃불이 켜져 있었다. 좌우 벽에 천장에 닿도록 세워진 책꽂이가 창을 가려서인 듯했다. 그리고 책꽂이에는 빼곡하게 책이 꽂혀져 있었다. 큰집 할아버지의 사랑에 한문책들이 가득한 모습 빼고 그렇게 많은 책이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얼핏 이 책을 다 사려면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고등학생 아들을 위해 서울에 커다란 집을 마련해줄 정도로 부자라면 그깟 책이 문제랴 싶기도 했다. 부러운 마음이 스쳐갔다. 아직 다른 학생이 올 시간이 되지 않았는지 재열도 방으로 들어와 셋이 둘러앉았다. 여전히 빙글빙글 웃는 재열이 이야기를 이끌었다.

“정형, 난 말이예요. 시다 소설이다 하는 건 도무지 재미가 없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도 지겨운데 이 친구는 날마다 저런 것들만 읽고 있으니 참 별종이지요?”

별종이라고 할 순 없었다. 그 나이의 학생답게 학교에서도 시나 소설을 읽는 아이들이 많았고 문학을 지망하는 학생도 한 반에 두엇쯤은 되었다. 임상호 정도면 집안을 일으키거나 제 밥벌이를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테니 시인이나 예술가를 꿈꾸는 게 별스런 생각도 아닐 것이었다.

“임형 말대로 나도 중앙고에 다니고 있다오. 난 사실 학교 선배에게 이끌려서 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을 정말 몰랐소. 하여튼 여간 반갑지가 않습니다.”

선택이 상호가 물은 말에 한꺼번에 대답을 하자 상호가 조금 놀란 듯했다.

“그럼 정형도 재열이가 꾸미는 일에 가담하러 오신 거구료. 허허, 아무래도 얘가 일을 낼 모양이네.”

임상호 역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친구인 재열을 바라보는 눈빛은 정겨웠다. 오히려 선택이 조금 불안했다. 조성구한테 들은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재열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 되었든 믿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재열은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읽은 시 한 편이 생각난다. 상호 너한테 비평을 좀 구해 보려 했는데 미래의 대시인은 그 시를 어찌 생각하는가?”

“조직 활동에 밤낮으로 바쁜 늬가 어찌 신문에 나온 시를 다 읽었어? 누가 쓴 무슨 시였는데?”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읽었지. 김광섭이란 시인이 이승만 대통령 팔십 회 생일을 축하한다며 서울신문에 발표한 시 늬도 봤잖아?‘

재열의 말에 상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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