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우두커니 서서 갈아엎은 논을 바라봅니다

사진이야기 農寫

  • 입력 2014.08.17 20:43
  • 수정 2014.08.17 21:15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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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전남 영광서 농사짓는 강민구(51)씨 인터뷰 내용을 편지글로 각색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어머니, 논을 갈아엎은 지도 어느덧 20여 일이 지났네요. 논을 갈아엎던 그 날은 진절머리 나도록 햇볕도 뜨겁고 숨도 턱턱 막히더니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까지 부네요. 시간 참 덧없지요. 얼마 전, 입추도 지났으니 곧 수확의 계절이 다가오겠죠.

어머니, 분을 참을 수 없었어요. 이 나라 정부가 쌀마저 외국에 내어준다 하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던데 가만히 있자니 우리 농민들 대놓고 무시할까봐 몸부림치 듯 자식 같은 논 짓이겨 버렸습니다. 속울음 삼키며 술도 많이 마셨네요. 그 날 이후 어른들께 혼 많이 났어요. 집안 어른, 마을 어른 할 것 없이 ‘미친놈’ 소리도 듣고, 쓴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제 나이도 벌써 오십이 넘었는데 말이죠. “생명을 갈아엎는 놈이 어딨냐” “식량 소중한지도 모른다” “보릿고개 생각도 못하느냐” “다시 모를 심어라” 등등 훈계하시는 어른들 말씀 묵묵히 새겨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오죽했으면, 니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기운내라” 그 말에 순간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그 날 이후 매일 갈아엎은 논을 지나칩니다. 집에 오고 갈 때마다 우두커니 서서 논을 바라봐요. 트랙터 바퀴에 패이고 뭉개지는 그 잔인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모가 있어요. 곧 나락이 패일 듯 꿋꿋한 생명력에 마음 한 구석이 짠하기도 합니다. 덩달아 잡풀도 이 때다 싶어 왕성하게 자라네요. 허투루 넘길 수 없어 수시로 논둑을 거닐며 풀을 맵니다. ‘미안하다’ 속죄하는 심정으로 풀을 매요.

   
▲ 강민구씨가 백수읍 죽사리 들녘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주유소에서 동네 주민과 담소를 나누는 강씨.
   
▲ 그가 농사짓는 180여 마지기의 논을 둘러보는 것, 그의 중요한 하루 일과다.

어머니, 그 날 기자들이 그러데요. 갈아엎은 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는지, 예정대로 농사지었다면 소출은 또 어느 정도 나오는지 묻더군요. 참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손해로만 따지는 질문에 화가 나기까지 하더군요. 농사를 짓던 안 짓던 논은 농민에게 근본이잖아요. 쌀은 삶의 일부잖아요. 생명같이 여기고 자식같이 여겼던 마음이 다 그리했기 때문이잖아요.

어머니, 이 세상에서 나는 생산물 중에 오직 농산물만 생산자가 가격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내 것은 얼마요” 하고 당당하게 말을 못해요. 헐값이든 아니든 주어진 가격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내다 팔수밖에 없어요. 농민들이 정부 눈치, 시장 눈치를 봐야 해요. 먹고 살려고 농사짓는데 먹고 살기가 참 힘듭니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 시절보다 더 힘든 세상이 와 버린 건 아닌지….

어머니, 쌀을 외국에 내어준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식량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뜻대로 되나요. 우리밀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어요. 불안하죠. 저 또한 30여 년 간 이 땅만 바라보며 살아 온 농민이기에 불 보듯 자명한 미래를 잠자코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적이라면 회초리를 맞아도 싸겠지만 어머니, 논을 갈아엎는다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항의였어요.

곧 다가올 기일에 어머니 좋아하는 꽃 들고 성큼성큼 찾아뵐게요. 이 못난 아들의 먹먹한 심정 달래 주실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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