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30회

  • 입력 2014.08.17 17:50
  • 수정 2014.08.17 17:51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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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학생이 아니니 학도호국단에 간여할 리가 있겠소. 잠깐 얘기했듯이 연맹단은 사실 이름만 학도호국단에서 빌려왔지, 꼭 학생들만의 단체라고 할 수 없다오. 하여튼 뜻이 맞는 동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니까, 꼭 같이 가봅시다.”

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어딘지 은밀한 모임이라는 데 호기심이 일었다. 조성구를 따라 간 곳은 명륜동의 어느 한옥이었다. 고향 마을의 큰집 정도로 이십여 칸이 넘는 꽤 큰 집이었다. 명륜동에는 그런 집들이 여러 채 이어져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선배님.”

대문을 들어서는 두 사람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는 학생이 눈에 익었다.

‘누구더라,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어깨가 벌어지고 눈빛이 유난히 빛나는 그를 바라보며 기억을 되살리는데, 갑자기 그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아니, 정선택 형 아닙니까?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요?”

그가 다가와 두 손을 내밀어 선택의 손을 잡을 때서야 비로소 그가 바로 서울로 올라오던 기차 안에서 만난 김재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김재열 형이구만요.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된 거요?”

선택의 물음에 조성구가 다시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신 답했다.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였구만. 서울 바닥이 이렇게 좁다니까. 그리고 여기 김형은 바로 이 집에 사는 사람이라오.”


선택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김재열은 친구인 임상호와 같이 서울로 올라왔다. 기차 안에서 들은 바로는 대전에서 소문난 부자인 임상호의 부친이 서울에 사둔 집에서 함께 학교를 다닐 거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이 집은 임상호네 집일 터였다.

“그 때 같이 왔던 임상호라는 친구는 어디 있소?” 김재열이 빙글빙글 웃었다.

“상호도 여기 있지요. 어쩌다 문학청년이 되어서 날마다 비탄에 젖어있답니다.”

“그럼, 여기는 그 임형 집이겠구려?” “그렇지요. 저기 방에 있으니까, 어서 들어가지요. 상호도 반가워 할 겝니다.”

김재열이 두 사람을 이끌고 안채로 들어갔다. 보통 어른들이 기거하는 안채로 서슴없이 들어가는 게 조금 이상했다. 고향 큰집을 드나들면서도 안채로 들어가 본 적은 한 번도 었었다.

“집 안에 어른들은 없소?”

조성구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재열에게 물었다.

“이 집은 일 년에 절반 정도는 텅 비어있답니다. 우리와 밥을 해주는 아주머니가 있으니까 아주 비는 건 아니지만, 상호 아버님이 사업차 서울로 와서 지낼 때만 어른이 있는 셈이지요. 본래 저와 상호는 다른 방을 쓰지만 오늘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라 안채를 쓰기로 했습니다.”

대청마루는 콩기름을 먹여 반들반들하게 닦아 놓았고 널찍한 안방 또한 별 가구가 없이 휑했다. 방과 마루를 합치면 사오십 명이 앉을만한 넓이였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배님은 잠시 앉아계시지요. 저는 정형하고 잠시 상호에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슈. 그런데 임형은 우리하고 같이 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거요?”

조성구도 임상호를 아는 눈치였다.

“완전히 문학에 빠져서 매일 보들레르니 말라르메니만 찾는 놈이 우리와 함께 하겠습니까? 제정신이 아니지요, 뭐.” 재열이 농담 비슷하게 대꾸하고는 선택의 팔을 끌었다.

“얼른 가서 인사나 나누고 오도록 하지요.”

중문을 지나서 사랑채로 간 재열은 기척도 내지 않고 벌컥 문고리를 당겼다. 방안에 임상호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바닥에는 책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데, 제목을 보니 학원이나 신태양, 사상계 등속의 잡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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