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중산마을 논우렁이로 강된장을 끓이다

  • 입력 2014.08.17 17:47
  • 수정 2014.08.17 17:48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해 봄, 춘천에 사시는 큰 이모부께서 놀러오면서 우렁이를 한 바가지 잡아오신 적이 있었다. 손질해본 적이 없어서 좀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나는 제주도의 바닷가에서 잡은 보말을 삶아서 먹던 것과 비슷할 거라 여기고 대뜸 씻어 건져 솥에 넣고 삶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우렁이와 마주치고 싶지 않게 되었다. 바늘로 삶아놓은 우렁이의 살을 꺼내보니 그 안에 모양을 갖춘 수수알 만한 새끼우렁이들이 오글오글 들어있었다. 뭔가 하면 안 되는 일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이 한동안 나를 지배하면서 괴롭혔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우렁이를 멀리하는 것은 아니니 내 스스로 얄팍한 나의 밑바닥을 보게 되는 한 예이기는 하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어설프게도 다만 우렁이를 넣은 강된장의 맛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까닭에서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

된장을 이용한 모든 음식은 늘 먹어도 질리지 않고 일정 기간 먹지 않으면 강렬한 그리움의 맛으로 변하여 사람을 괴롭힌다. 더구나 쫄깃한 식감으로 입안을 즐겁게 하는 우렁이를 넣은 강된장은 말로 그 맛을 다 표현하기 어렵다. 밥에 한 숟가락 떠 넣고 쓱쓱 비벼먹는 맛이 일품이라 밥 한 그릇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 우렁이 하나씩을 건져 얹은 쌈을 싸도 밥도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공기 좋고 경관이 좋은 한적한 시골의 마당의 평상에라도 앉아 먹을라치면 운치까지 있어 더욱 그렇다.

오래된 문헌에 의하면 18세기 조선의 한 선비는 우렁이를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내가 경험했던 그대로 어미를 죽이고 세상에 나오는 우렁이의 생태적 특성 때문이라 했다. 서식환경이 나빠지면 자신의 살을 먹여서 새끼를 키우다가 새끼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미는 살이 모두 없어져서 껍데기만 물에 둥둥 뜬다. 희생하는 어머니의 상징 같은 생물이 우렁이라 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우렁이가 인체에 남아있는 열독(熱毒)을 제거하고 갈증을 멈추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부은 것을 가라앉히며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하여 배 속에 열이 몰리는 것을 없앤다고 기록하고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황달에 좋다고 하시면서 영양실조로 눈이 노래지던 동생에게 논에서 잡은 우렁이를 삶아 먹이기도 하셨다. 중국의 <본초강목>에는 황달과 숙취에 좋으며 매일 끓여서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할머니의 처방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며 특히 술 먹은 다음날 숙취를 없애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잘하고 소소한 추억이 담긴 논우렁이를 무주의 중산마을에서 만났다. 덥고 지루하게 비 오는 날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 같은 때, 논우렁이를 넣고 끓인 강된장 한 술에 열무김치를 넣고 비비는 보리밥은 참으로 맛나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