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마다 쌓은 무안 ‘양파산성(城)’

사진이야기 農·寫 헐값 거래하느니 썩힐 판, 제값 소비 확산 필요

  • 입력 2014.07.13 23:49
  • 수정 2014.07.13 23:58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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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람이 하나 있어. 이 세상에서 가기 전에 동네 양반들께 술 한 잔씩 사고 가는 거야. 사람 못나기 전에 그리 해야 되는데 양파값이 이 지경이니 돈을 만질 수가 있나.”

지난 8일 전남 무안군 무안읍 매곡리에 위치한 양림마을 어귀에서 만난 박준상(79) 할아버지는 푸념하듯 말을 읊조렸다. 두 눈은 마을 진입로를 따라 길게 쌓아놓은 양파더미를 바라 본 채였다. “이게 올해 수확한 만생종 양파야. 한 망도 팔지 못하고 여기에 그냥 쌓았어. 내 것만 한 850개 정도 되려나. 동네에서 양파 농사짓는 사람들은 모두 쌓았다고 생각하면 돼. 안 팔리면 썩히는 거지.”

현재 양파 시세(20kg 한 망)는 4,000 ~ 5,000원 선. 상인들은 줄곧 4,000원 선에서 거래하기를 희망했지만 요즘은 이마저도 뜸하다. 양파값이 워낙 헐값이다 보니 상인들도 거래를 중지하고 관망세로 돌아선 탓이다. 농민들은 한 망 당 가격이 최고 9,000원은 돼야 내년 농사를 기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농협과 계약재배한 농민들이 제시받은 금액도 처음엔 9,000원이었다. 그러나 수확 후 실제로 거래된 금액은 7,000원. 마을에서 만난 한 농민은 “농협에서 7,000원에 사줬는데 계약금액과의 차이를 보전해 줄지는 지금으로선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농민들은 마을 어귀에 쌓아놓은 양파더미를 가르켜 ‘양파산성(城)’이라 일컬었다. 팔지 못하면 결국 썩어버려질 ‘비운의 성(城)’이다. 그리고 이 성들은 양파 최대 주산지인 무안의 각 고장마다 세워져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박 할아버지는 당부하듯 말했다. “양파가 몸에 좋다. 많이 먹어야 건강하다. 그런 희망을 써 줘. 농촌이 양파 때문에 큰 일 났다 해버리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정작 큰 일 난 게 맞는데 ‘희망’을 써달라는 한 늙은 농부의 요청에 조심스럽게 답한다. “우리 몸에 좋은 우리 양파, 더 많이 사 먹겠습니다. 제값에 사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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