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엔 울진 문어로 상큼한 초무침 한 접시

  • 입력 2014.07.13 21:39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문화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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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촌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을 부산과 진해의 바닷가에서 보냈으므로 어쩌면 어촌의 먹거리 유전자가 내 몸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 안의 그 유전자가 완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외딴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와 결혼을 감행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

결혼하겠다고 시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갔던 날 완도에 딸린 새끼섬 생일도 선착장 부근에서 주황색의 통에 담긴 문어들을 보았다. 남편은 문어가 주황색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주황색 통을 문어가 다니는 길목에 놓아두면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가 절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끌어올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여자들은 논게를 잡아 긴 막대기 끝에 매달고는 물이 가슴까지 차는 바닷물로 들어가 가만히 있으면 문어가 게를 물고 나오기도 한단다.

문어가 머리는 크지만 아이큐는 나쁜가보다고도 했다. 살아있는 문어를 처음 본 내가 신기했는지 문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는데 나중에 김영하의 소설에서 본 것은 문어가 구멍을 좋아하여 구멍 뚫린 통 속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시선이 잘 가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자기만의 위안의 공간을 만드는 어린 아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어린 아이는 어쩌면 무력해진 현대인의 모습일지도 모르고 문어는 그렇게 무기력해진 사람들에게 꽤나 괜찮은 식재료가 되어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 같다.

예부터 산에는 도토리, 들에는 녹두, 논에는 미나리, 바다에는 문어라고들 했다. 외국에서는 ‘악마의 고기’라 부르며 먹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혼상제의 행사에 두루 빠지지 않는 귀한 식재료였다. 말린 문어는 지혈효과 뿐 아니라 혈액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어 산후의 산모에게 끓여주는 미역국의 재료로 아주 훌륭하다. 1800년대의 고서인 <규합총서>에는 돈 같이 썰어서 볶으면 그 맛이 깨끗하고 담백하며, 문어의 알은 머리, 배의 보혈에 귀한 약이므로 토하고 설사하는데 유익하다, 쇠고기 먹고 체한 데에는 문어대가리를 고아먹으면 낫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방과 탄수화물의 양은 적은 반면 단백질이 풍부한 문어는 100g당 74kcal로 열량도 낮은 식품이다. 타우린 성분이 풍부해 망막 기능을 증진시켜 시력감퇴를 예방해주고, 혈액 중 중성지질과 콜레스테롤을 억제, 간 해독작용으로 피로회복에 좋다고도 알려져 있다. 허약한 어린이에게는 죽을 쑤어 먹이면 건강해지고 문어의 DHA, EPA 성분이 성장기 어린이나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높여주므로 권할 만한 식품이다.

공부하느라 집에도 잘 못 오는 딸아이 생일이라 모처럼 가족파티를 하려고 장을 보러 갔다가 울진에서 온 문어를 만났다. 지리산 구석에 사느라 바닷가 출신이면서도 해산물 구경 잘 못하는 남편 생각도 나고 하여 한 마리 샀다. 보통은 초고추장을 만들어 문어초회로 먹지만 오늘은 좀 다르게 제철오이와 살짝 데친 마를 넣고 새콤한 초무침을 만들었다. 밖엔 비 오는데 우리 집 식탁은 문어초무침 한 접시로 상큼하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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