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속 씨와 씨앗 속 열매

  • 입력 2014.07.13 21:38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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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너구리가 다가오니 배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태풍이 화제다. 뭐 배농사 짓는 이들만이 화제겠는가만, 배는 바람에 의한 피해가 다른 것들에 비해 큰 편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시인 유하의 첫 시집 제목이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였을까. 압구정동이 개발되기 전에는 온통 배밭 이었기 때문이다. 태풍이 불어닥쳐 주먹만 한 배들이 미처 자라지도 못한 채 수 없이 바닥에 뒹구는 모습을 바라보면 가슴이 쓰리다.

배밭에서 태어나 배농사를 짓고 있는 필자로서는 배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호기를 부리기도 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구석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배를 먹는 사람들은 배 하나에 씨앗이 몇 개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별로 많이들 알고 있지 않을 것이다. 배가 크고 달고 시원하면 그만이지 씨앗이 몇 개인지 알려 들 필요가 무에 있을까. 하지만 배에 씨앗이 몇 개요 하고 물어보면 다들 몇 개라고 답할 것이다. 그것이 상이라도 걸린 퀴즈라면 검색도 하고 먹어도 보고 해서라도 쉽게 씨앗수를 밝혀낼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씨앗의 수를 알아낸다는 것은 시간이 걸릴 뿐 해결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씨앗의 수가 몇 개의 열매를 만들어 내는지는 알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슈퍼컴퓨터에 연결해서 계산 한다고 해도 몇 개의 열매를 매달 수 있을지는 쉬운 계산이 아니다. 그래서 한 마지기라는 면적은 지역에 따라 위치에 따라 달리 하는 것이다. 볍씨 한말을 뿌리는 적정면적은 여러 가지 환경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말에 ‘열매 속 씨앗수는 알아도 씨앗 속 열매 수는 모른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정부가 쌀개방을 하며 관세를 350~500%로 하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이는 현상에선 그럴 수 있다. 고율의 관세가 유지되고 지켜진다면 국산쌀보다 비싼 수입쌀을 먹는 어리석은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풍년이 들어 수입가격이 더 내려가거나 미질을 높여 수입쌀이 시장을 장악한다거나하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대통령의 모가지를 걸고 지키겠다는 쌀이 불과 몇 년만에 개방이라는 핵폭탄을 목전에 둔 것도 같은 이치다. 이게 바로 열매 속 씨앗수는 알아도 씨앗 속 열매 수는 모른다는 말이다. 게다가 일본의 관세 1,000% 주장도 제일 싼 태국산 쇄미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관세율이라는 폭로가 있는 마당이고 보면 우리 수입 식용쌀이 정부가 주장하는 400% 관세를 물리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농사는 그렇다. 누구도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저 하늘이 만드는 것이 농사고 그걸 먹고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약삭빠른 괭이 밤눈이 어둡단 말이 있다. 정부도 그렇고 농민들도 그렇다. 약아빠져서 대낮에 보이는 것만 보려 하지 말고 안보이는 것도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조상님네들은 열매 안의 씨앗이 내년에 그만큼의 열매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계산법을 알고 농사에 임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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