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25회

  • 입력 2014.07.06 19:27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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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서는 약간 시큼한 맛이 났다. 인섭은 마치 술꾼처럼 잔을 내려놓고 캬아, 하는 소리를 내며 오이를 집어 들었다. 선택도 따라서 오이 한 쪽을 입에 넣었다.

“정형, 농촌을 살리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실은 나라 일을 맡은 정치인들이 좀 잘해야 되는 거 아뇨? 솔직히 나는 이번 선거를 보고 기가 막혔소.”

인섭이 뜻밖의 말을 했다. 선택도 열흘쯤 전에 끝난 제 3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 들은 말이 있긴 했다. 하숙 아닌 하숙집 주인인 신정호 씨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였다. 돌아간 아버지와 함께 철도노조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어서였을까, 그는 선거 전후에 술을 마시고 들어와 울분을 토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선거 날 얼마 전이었다. 저녁상을 함께 받은 한규와 선택 앞에서 그는 소주잔만 연신 뒤집으며 식식댔다.

“여보, 당신 나하고 같이 일하는 완범이 알지? 갸가 어제 경찰서에 잡혀갔어. 이럴 수가 있나, 참 기가 막혀서.”

아주머니도 퍼뜩 놀라는 눈치였다.

“아니, 그 이가 왜요? 무슨 잘못을 했길래?”

“흥, 잘못이나 해서 잡혀갔으면 누가 뭐래. 집에 군불 땔 땔거리 한 아름 했다고 산림법 위반으로 잡아넣었다는구만. 근데 그건 괜한 소리고 완범이가 신익희 씨 선거운동을 한다는 죄목이라네, 글쎄.”

“선거운동이랑 산림법이 무슨 상관이래요?”

“당신은 요즘 돌아가는 꼴에 아예 깜깜이구만. 야당 쪽에서 선거 운동하는 사람들은 싸그리 잡아가는 판이야. 잡아다가 선거 날까지 구류를 때려서 아예 운동을 못하게 하려는 거지. 대체 나라 꼴이 어떻게 되려고 하는지.”


신정호는 술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아주머니는 몹시 불안한 표정이었다.

“당신이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괜히 애들 듣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마요.”

그러면서 선택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어쩐지 아저씨의 편을 들어줄 한 마디를 해야할 것 같았다.

“저도 신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조봉암 같은 사람은 아예 선거에 등록도 못하게 방해를 해서 결국 출마를 못했더라고요. 자유 국가라면서 이런 식으로 정치를 하는 건 맞지 않다고 봅니다.”

선택의 말에 아저씨는 손뼉이라도 칠 듯이 반가워했다.

“그렇지? 적어도 고등학생이라면 그 정도는 알아야지. 한규야, 너도 선택이한테 세상 돌아가는 일 좀 배워라. 아직도 어린애처럼 굴지 말고. 선택아, 학교에서는 어떠냐? 이승만이나 자유당에 대해서 불만이 많지?”

한 마디 했다가 졸지에 곤란해졌다. 사실 학교에서는 온통 반공 아니면 정부와 이승만을 찬양하는 교육뿐이었다. 도의교육이라는 과목을 일주일에 두 시간씩 했는데 말이 도의일 뿐 내용은 공산당과 북괴를 쳐부수자는 멸공 교육이었다. 때로 도의 시간에 음악선생님이 들어와 풍금을 치며 ‘역적의 공산당을 쳐들어가자,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가자’ 하는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하는 노래가 유행가처럼 불리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정부나 자유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리 없었다. 모두 그런 말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눈치로 알고 있었다. 가끔 은근히 정부를 비판하던 선생님 하나가 며칠 동안 어딘가에 잡혀갔다가 나온 적도 있었다. 소문으로는 초죽음이 되도록 맞았다고 했지만 정작 그 선생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글쎄요, 아직 학생들이니까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저런 소문이 있으니까 아이들끼리 그런 말을 하기는 합니다. 대통령 주변에 간신배들이 많다고도 하고.”

듣고 있던 아주머니가 나섰다.

“이제 그런 말들은 그만 허우. 원, 간이 떨려서 못 앉아있겠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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