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기쁨은 옛말 … 상실감만 가득

사진이야기 農寫 의성 마늘 수확 현장, 예년보다 낮은 시세에 ‘씁쓸’

  • 입력 2014.06.29 22:33
  • 수정 2015.03.24 11:45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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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만씨가 마늘 묶음을 건조대로 올리고 난 뒤 휘청거리다가 경운기 적재함의 기둥을 붙잡고 있다.
   
▲ 비닐을 들썩일 때마다 마른 먼지게 하얗게 일어난다. 김태정씨가 갈고리로 걷어낸 비닐을 한쪽으로 치우고 있다.
   
▲ 마늘수확기를 천천히 밀고 가면서도 시선은 늘 아래를 향한다. 종자로 쓰일 마늘이 행여 상처입지 않을까 해서다.
   
▲ 임동륜씨는 영주에서 온 아주머니들과 늘 함께 작업한다. 이 인연도 횟수로 20여년째. 점심 먹는 분위기가 꼭 가족같다.
   
▲ 밭떼기로 거래가 끝난 밭은 상인들이 직접 수십 명의 일손을 데리고 와 마늘을 수확한다.

마늘밭을 덮고 있던 비닐을 갈고리로 힘껏 당겼다. 바짝 마른 흙먼지가 바람에 흩날리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있는 그대로 먼지를 뒤집어 쓴 농부는 별 아랑곳없이 고랑을 헤쳐 나가며 비닐을 걷어냈다. 고되고 귀찮은 일, 일손을 쓰자니 한 마지기(200평) 당 비닐 제거에만 10만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아끼는 게 곧 이익’이라 농부는 직접 그 수고스러운 일에 두 팔을 걷었다. 밭떼기 거래도 거부했다. “가격이 헐값”이라는 이유에서다. 김태정(63)씨는 “오늘은 비닐 제거, 수확은 내일”이라며 “건조도 창고에서 직접 해 시장에 내다 팔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들녘.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마늘의 고장에서 마늘 수확이 한창이다. 이 밭 저 밭 할 것 없이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작업 중인 농민들이 부지기수다. 그 모습들을 멀리서 바라보니 꼭 밭에 바짝 엎드린 모양이다.

마늘수확기를 이용해 종자로 사용할 마늘을 캐던 심상득(64)씨는 종자를 제외한 마늘은 이미 상인과 밭떼기로 거래했다. 한 마지기당 240만원. 그나마 “마늘이 좋아서”라며 툭, 내뱉은 말에는 힘이 없었다. 얼굴 표정엔 수확의 기쁨 보단 상실감이 묻어났다. 300만원을 웃돌았던 예년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 탓이다. “작년보다 많이 못하지. 못해. 남는 게 없어.” 심씨는 말을 아꼈다.

바로 옆 밭에서 캐낸 마늘을 한 접씩 묶던 임동륜(78)씨의 사정도 심씨와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상인은 임씨에게 밭떼기 가격으로 한 마지기 당 200만원을 제시했다. 팔 수 없었다. 아니 안 팔았다. 임씨는 “쌔가 빠지게 고생해서 상인 좋은 일 시켜주는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속이 탄 듯 소주 한 컵을 들이부었다. 그는 최소 30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단촌면에서만 40년 가까이 마늘을 재배해 온 그에게 현재는 과거보다 더 농사짓기 힘든 시절이다. 임씨는 “팔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나 불투명한 ‘그 때’가 그를 더 속 타게 만드는 듯 했다.

김기만(69)씨는 관덕리 들녘을 좌우로 나누는 농로를 따라 경운기를 몰고 갔다. 적재함에는 사람 키를 훌쩍 뛰어 넘는 높이로 마늘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속된 말로 ‘환장대’라 불리우는 건조장에 마늘을 매달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집에 설치한 건조장 일부엔 벌써 마늘이 매달려 있었다. 내년 농사에 종자로 쓰일 마늘이다. 임씨는 경운기 적재함에 올라타 마늘 묶음을 아내에게 쉴 새 없이 올려주었다. 적재함에 쌓인 마늘 높이가 낮아질수록 그의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얼굴빛 또한 홍조를 띄웠다.

‘마늘 건조 작업에 환장한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님을 새삼 떠올렸다. 땀범벅이 된 그가 다시 경운기 운전대를 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늘 농사지은 지 30년도 더 됐어. 여건이 더 안 좋아. 나이는 많고 사람은 없고 가격은 헐값이니… 이제는 고생한 보람 찾기도 쉽지 않아.”

그러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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