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농약급식을 조장하는가

  • 입력 2014.06.01 11:05
  • 수정 2014.06.01 11:09
  • 기자명 허남혁 대구대 지리교육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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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혁 대구대 지리교육과 외래교수
‘농약급식’ 논쟁이 서울시장 선거 막판에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급히 발표되었고 서울친환경유통센터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발표가 하루만에 번복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현재의 ‘농약급식’ 논쟁은 박원순 시장 시절에 서울친환경유통센터에서 공급한 친환경농산물 중에서 농약이 검출된 농산물이 학교급식으로 공급되었느냐는 팩트를 두고서 벌어지고 있다. 설령 일부 팩트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책임은 서울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농식품부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은 그 팩트가 아니라 다른 지점이다. 즉, 누가 친환경급식을 추진하고 있고, 누가 친환경급식을 반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친환경농업과 급식을 고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올 2월 서울시교육청이 학교에 내려보낸 지침이 문제가 되었다. 학교에서 친환경농산물 사용 의무비중을 70%에서 50%로 낮추고 의무가 아닌 권장사항으로 바꾸었고, 유통센터 이용을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유통센터 이용 학교는 거의 사라졌고, 작년부터 서울시 학교급식에 공급을 준비하고 있던 각 지역의 친환경농민들은 뒷통수를 크게 맞았다. 친환경농산물이 아니라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산물의 학교급식 사용 비중이 올 들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농약급식’의 주범은 친환경급식을 장려하는 박원순 시장이 아니라 문용린 서울교육감인 것이다.

이미 그러한 의도는 올 초에 서울교육청 주최 학교급식 워크숍에서 교육청이 발표한 “농약은 과학이다”라는 표현이 실린 발표자료에서 잘 드러났다. 농약은 과학적으로 관리되고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농약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였다. 뿐만 아니라 친환경농산물에서 GAP인증 농산물로 대체하겠다는 서울교육청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 문건이었다. 주지하다시피, GAP 인증에는 제초제의 사용이 부정되지 않는다.

농업정책의 전환을 통한 친환경농업과 유기농업의 사회적 장려와,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의 유기농 전환은 선진국,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이미 보편적 추세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00년대 후반부터 녹색 공공조달(GPP)의 활성화를 중요한 정책적 목표로 삼고, 다양한 분야 중에서 먹거리(학교급식, 공공급식)를 포함시키고 있다.

2009년부터 덴마크는 정부 차원에서 공공급식소, 단체급식소, 일반 식당, 호텔, 카페 등에서 유기농 식재료를 30% 이상 쓰는 곳에 3단계 인증마크(금장, 은장, 동장)를 부여했다. 이후 유기농 식재료 구매량이 2배로 늘었고, 현재 640여개소가 인증마크를 받았는데, 그 중 30%가 공공급식소이다. 2012년 덴마크 유기농 진흥계획에서는 향후 2020년까지 공공기관 급식소(학교, 병원, 유치원, 사회복지시설)의 유기농 식재료 사용비중 목표를 60%로 설정하였다.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은 더욱 공세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인구 50만명인 코펜하겐은 2007년 시 산하에 코펜하겐 먹거리 센터(Copenhagen House of Food)라는 공적인 컨트롤타워를 설립했다. 2015년까지 공공급식에 사용하는 식재료의 90%를 유기농으로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유치원, 학교, 사회복지시설, 공공기관 등 900개 이상의 공공급식소(일 6만식 공급)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총 식재료 구매액의 2% 미만에 해당하는 예산을 10년 동안 지출하고 컨트롤타워를 하나 설립하는 것 만으로, 지자체의 급식 관련 인력의 역량을 강화하는 혁신적인 인적자원을 창조해냈다. 시설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한 것이다. 코펜하겐은 올해 유럽연합에서 선정한 유럽의 녹색수도로 선정되었다.

서울시 광역친환경급식통합지원센터도 이 참에 학교급식에서 더 나아가 서울시가 직접 관리 가능한 공공급식 영역까지 확대할 고민을 해야 한다. 친환경 유기농, 로컬푸드 등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우선적으로 구매하여 공적인 영역에서 시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하는 일만큼 가장 절실한 정책도 없을 것이다. 북유럽형 사회경제정책(노르딕 모델)은 먹거리 문제에서도 유효하다. 그것이 농약급식 논쟁에서 얻어야 할 중요한 사회적 교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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