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특례조치 현상유지 방안의 국제법적 가능성

  • 입력 2014.05.24 11:30
  • 기자명 김병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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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쌀’
� 민족의 혼이요 우리 농업 최후의 보루인 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쌀을 둘러싼 현황, 쌀 시장개방과 양곡정책 그리고 전면개방 위기 상황의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해 7회 연재로 풀어 본다.

1. 우리쌀 의 현주소
2. “대통령직을 걸고 쌀을 지키겠습니다”
3. 쌀 정책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4. 쌀을 지켜야 한다
5. 고율관세의 허구
6. 국제법으로 본 ‘현상유지’ 왜 가능한가
7. 현상유지 가능하다

한국은 1995년 발효된 우르과이라운드 농산물협정에 따라 쌀과 관련하여 10년 동안(1995년부터 2004년까지) 관세화를 유예하고 매년 의무수입물량(MMA : Minimum Market Acess)을 수입하였고, 2004년 재협상을 통하여 다시 10년 동안(2005년부터 2014년까지) 관세화를 유예하고 매년 의무수입물량을 수입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 2014년 의무수입물량은 40만9,000톤으로 늘어났고, 이는 2013년 기준 국내 전체 쌀 소비량의 9%에 해당한다.

2015년 이후 한국의 쌀시장 개방 방법과 관련하여, 한국이 취할 수 있는 협상방안으로는 ① 관세화 전환 방안(관세화 전환 + 40만 톤 의무수입) ② 관세화 유예협상 방안(관세화 유예 + 의무수입물량 증가 양허) ③ 현상유지 방안(관세화 유예 + 40만 톤 의무수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중 현상유지 방안을 선택해 협상을 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현상유지 방안의 선택가능성과 관련하여 ① 2014년이 경과하는 경우 자동관세화 되거나 관세화의무를 부담하게 되는가 ② 현상유지가 선택 가능한 방안인가가 문제된다. 이하에서 위 두 가지 논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자동관세화 또는 관세화의무 부담 여부

농업협정상의 한국 쌀 특례조치(부속서 5.7항 내지 5.10항)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특례 및 우대조치의 하나로서 농업협정의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부속서 5.7항에 의해 한국은 농업협정 제4조 제2항의 관세화 의무의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만, 매년 의무수입물량을 수입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함)이고, 한국 쌀에 대한 특례조치에는 특정한 기한이 정해져있지 않다.

농업협정 부속서 5.8항 내지 5.10항은 2004년에 한국 쌀 특례조치를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재협상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재협상에 따른 이행기간 시작 후 마지막 차년도(10차년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농업협정 타결 당시 이에 대한 문제는 추후 있을 다자간 무역협상(DDA 협상)에서 합의되는 내용에 따라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규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합의되는 내용은 농업협정 부속서 5.8항 내지 5.10항과 같은 규정을 두는 것일 수도 있고, 관세화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방식의 내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협정 당사국들은 2014년이 모두 경과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쌀은 자동관세화 되는 것이 아니라, DDA 협상의 합의 내용에 따라 개방의 방법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쌀에 대한 관세화가 자동적으로 성립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 쌀에 대한 관세화 의무도 발생하지 않고, 한국 쌀의 관세화 여부는 한국의 선택과 협상에 달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상유지 방안의 선택 가능성

위에서 본바와 같이 한국 쌀 특례조치는 농업협정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이는 전체 WTO 규정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DDA 협상은 기존의 WTO 규정 전반에 대한 재논의를 의제로 삼고 있다.

그런데 DDA 협상은 주지하다시피 2001년 11월에 시작되었으나, 2005년 12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주요 협상분야별 협상 지침 및 방향을 포함한 각료선언문을 채택했고, 2006년 7월에는 협상의 부진을 이유로 Lamy WTO 사무총장이 DDA 협상 전체에 대한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협상을 다시 재개하여 2009년 12월에는 DDA 협상을 2010년 내 타결하자는 목표를 제시하였으나, 세부원칙(modalities)의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고, 2013년 경까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후 WTO는 DDA 협상 전반을 일괄 타결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에 따라, 합의 가능한 분야에서 우선 협상을 진전시키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선택하고, 2013년 12월 7일 제9차 WTO 각료회의에서 DDA 협상 전체 의제에 비하면 매우 작은 부분이고 상대적으로 쟁점이 적어 협상이 가능한 농업, 무역원활화, 개발 3개 부문 10개 이슈로 구성된 발리 패키지(small package)를 타결하고 10개의 합의문을 채택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농업보조금 규정과 인도의 협상내용이다. 농업협정의 농업보조금 규정에 의하면 국제농업시장에서 식량가격을 왜곡시킬 수 있는 국내정책(보조금지급 등)을 금지하면서, 다만 개도국에 대해서는 농업총생산의 10%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금지보조금(AMS : Aggregate Meas urement of Support)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는 2013년 9월 경 국민식량보장법을 시행하면서 전체 인구 12억 명 중에서 3분의 2에 해당하는 약 8억 명에게 쌀, 밀 등의 구매에 대한 식량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보조금 규모가 200억 달러 수준에 해당하여 인도 농업총생산의 10%를 훨씬 초과하게 되어 WTO 농업협정의 보조금규정에 위배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인도 정부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WTO 협정 아래에서 어떤 분쟁도 없이 항구적으로 식량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WTO에 제시하고 협상을 진행하였다. 결국 WTO는 발리패키지에서 개도국의 식량안보 목적 공공비축으로 인한 보조금한도 초과에 대해서는 일정조건 충족시 영구적 해법이 마련될 때까지 분쟁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합의하였다. 이렇듯 인도는 적극적인 협상을 통하여 농업협정에서 금지한 보조금 한도 초과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농산물 협정과 관련하여 WTO 회원국들 중 선진국들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6년간 약속한 의무를 이행했고, 개발도상국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약속한 의무를 이행한 상태다. 그리고 DDA 협상의 전체 의제 중 발리 패키지를 제외한 나머지 의제는 현재까지 협의가 되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선진국들은 농업협정에 따른 의무이행이 종료된 2000년의 현상(의무이행수준)을, 후진국들은 2004년의 현상(의무이행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그 어떤 추가적인 개방조치나 의무이행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DDA 협상과정과 현재 WTO 회원국들의 의무이행상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① 국제협상(다자간 협상)은 언제든지 예정된 교섭시한이 경과된 후에도 협상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 ② 협상이 예정된 교섭시한을 넘겨 교착상태에 빠지더라도 (어느 국가의 협상에서의 명시적 탈퇴가 없는 한) 협상이 최종 결렬된 것이 아니라는 것 ③ 협상의 잠정 중단 또한 가능하다는 것 ④ 협상의 중단 내지는 협상 시한의 경과가 농업협정을 포함한 WTO 규정에 어떤 영향력을 주지 않기 때문에 회원국들의 기존의 협정상 권리·의무에 어떠한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것(standing still) ⑤ WTO 회원국들은 자국의 사정을 고려한 협상방안을 WTO에 제시할 수 있고, WTO 협상결과에 따라 WTO 규정(내용)의 제한이나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WTO 회원권들은 자국이 양허한 사항을 제외한 사항에 대해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은 2015년 이후 쌀시장 개방의 방법과 관련하여, WTO에 2004년 재협상의 결과를 현상으로 유지하고 추가적인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방안(standing still)을 협상의 의제로 제시할 권리가 있으며, 협상 여하에 따라서는 그 방안 또는 그 방안의 일부를 관철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2015년 이후 한국의 쌀시장 개방의 방법과 관련하여 현상유지방안(standing still)은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협상방안 중의 하나라 할 것이다. <김병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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