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됐던 곳에 관심을

  • 입력 2014.04.27 10:13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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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은 당황했다. 흔들거리던 배는 마침내 크게 기울기 시작했고, 배 안으로 서서히 바닷물이 들이닥쳤다. 선장은 마치 준비된 방편이 있는 양 동요치 말고 대기하라 일렀다. 지시에 따랐던 승객들은 결국 배와 함께 바다로 가라앉았다. 선장은 배를 버리고 떠났다.

온 나라를 비탄에 빠뜨린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다. 꽃망울 같은 젊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수장되거나 실종됐고, 사고를 둘러싼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는 여전히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필자 또한 연일 비통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단 한 사람의 목숨조차 어찌 일개 산업에 견줄까마는, 선박 침몰 사고에 우리 축산업의 모습이 불현듯 겹쳐 보인 것은 몇 달 동안이나 거기에만 골몰해 온 새내기 축산 기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첫 문단에서 승객을 농민으로, 선장을 정부로, 배를 축산업으로, 바닷물을 FTA로 바꿔 읽어보면 전혀 낯설지 않은 글이 된다.

여론은 이번 선박 침몰 사고를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방관, 안일함, 무책임, 혼돈, 그리고 그로 인해 희생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 안에 들어 있다. 그것들이 표면화 됐을 때, 사태는 이토록 참담하다.

FTA, TPP, 쌀개방…. 축산업의, 농업의 위기가 코앞에 닥쳤지만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은 무책임 혹은 혼돈으로만 비쳐지고 있다. 언제든 배를 버리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 선장처럼, 농민들의 아우성을 외면하고 있다. 끝내 농축산업이 붕괴하고 국민들이 절망에 빠진 뒤에야 쭈뼛쭈뼛 사죄에 나설 것인가.

쌀개방 현상유지, 주요농산물 국가수매제, FTA 무역이득공유제. 농민들의 목소리는 처절하고도 세밀하다. 이번 사고를 큰 거울삼아 정부가 농업을 비롯, 사회에서 소외됐던 분야에 한층 귀를 기울이고 손길을 내밀게 된다면, 원통하고 억울한 승객들의 희생에 소중한 가치나마 부여할 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사고 희생자, 실종자와 그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반드시 있을 기적을 간절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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