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랑드 소금과 신안 천일염의 머나먼 거리

  • 입력 2014.04.13 19:28
  • 수정 2014.04.13 19:34
  • 기자명 허남혁 대구대 지리교육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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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혁 대구대 지리교육과 외래교수

발렌타인데이에 연인들이 선물하는 초콜릿이 사실은 서아프리카 아이들의 노예노동 속에서 흘리는 눈물이 밴 ‘나쁜’ 초콜릿이었다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아프리카의 카카오 생산 소농들이 제값을 받는 공정무역 초콜릿이 ‘착한’ 초콜릿이라는 인식이 이제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되었다.

최근 유럽에서는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필수품인 장미가 아프리카 케냐의 호숫물을 독점 사용하는 거대 화훼농장에서 생산되어 비행기로 수송되고, 물이 고갈되고 오염되면서 원래 농사짓고 고기잡던 원주민들의 삶이 파괴되고 있다는 인식이 커져가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지리학과 수업시간에도 많이 언급하는 두 가지 에피소드다. 멀리 떨어져 있어보이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물건을 통해 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은 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에서만 그런 부당한 관계가 발생하는건 아니다. 이번 신안 신의도 염전노예 사건은 우리나라 안에서도 먹거리 생산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리가 음식을 만들면서 반드시 사용하는 세상의 빛 ‘소금’에 노예처럼 일했던 염부들의 피눈물이 배어있다는 사실. 신안 천일염의 명품화·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신안군이나 정부로선 굉장히 큰 타격이다.

신안 천일염을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에 견줘 미네랄과 유기물 면에서 품질이 더 낫다고 자부심을 갖는건 좋다. 그런데 게랑드가 1970년대부터 어떻게 지금의 명품소금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게랑드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다.

프랑스에서도 전통적인 염전은 산업화된 소금생산방식과 도시화의 물결에 밀려 거의 사라질 지경이었다. 학생운동을 경험한 68세대들이 게랑드 지역에 들어가 지역민들을 설득하며 리조트 반대, 원전반대 운동을 펼치며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전통적인 염전을 지켜내고 협동조합을 결성해서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그간의 노력을 통해, 이제는 도시의 젊은이들과 심지어는 외국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염부가 되기 위해 소금장인학교에 입학한다. 더 나아가 게랑드 장인들의 결사체인 협동조합에서 공익법인을 만들어 아프리카 기니의 쌀농부, 염부들과 국제적인 협력사업을 펴는 등 다양한 공익사업을 진행한다. 

신안의 염전들이 프랑스의 게랑드를 따라가려면 이런 프로세스를 학습하고 지금부터 지역에서 조금씩 그간의 관행과 제도를 바꿔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금생산자들의 협력을 통해 소금의 유통구조와 부가가치를 높여 노동조건을 바꾸고, 게랑드의 토판염처럼 장판을 걷어내고 제초제 사용을 금지시켜 염생식물과 철새의 서식지를 보전하는 등 염전 주변의 생태적 조건을 개선하는게 급선무다. 포르투갈의 아베이루 염전과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트라파니 염전 역시 갯벌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이 지역을 생태적으로 보전하는 노력이 기본이 되어 소금 생산의 고품질화와 친환경화, 협동화를 지향하고 있다.

프랑스에 이민간 일본인 화가가 쓴 「게랑드의 소금이야기(2008)」라는 책에 그간 게랑드에서 벌어진 일들이 잘 나와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일본과 연결하여 반핵, 생태운동을 하는 저자가 그간 게랑드와 프랑스 사회를 접하면서 생각해온 상당히 깊은 수준의 농본주의, 생태주의 철학이 담겨 있다. 책 군데군데에 일본의 나리타 공항 반대운동인 산리즈카 투쟁 이야기, 유럽의 광우병과 GMO 논쟁도 언급하면서, 유럽이 1970년대부터 생태주의 운동의 저항 속에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기존 관행농업에서 고품질 농업으로 전환시키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농업의 다기능성을 증진시켜 왔으며 어떻게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지역의 협력을 이끌어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제발로 찾아와 자랑스런 염부가 되느냐, 아니면 강제로 잡아와서 노예같은 염부를 만드느냐, 이 둘 간의 간극은 게랑드와 신안 간의 거리 만큼이나 엄청나게 멀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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