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살처분 보상금, 계열사-농가간 불편한 현실

계열사 수령 후 농가에 사육비 자의적 정산
보상금 적을땐 오히려 농가가 보충해야

  • 입력 2014.03.30 19:34
  • 수정 2014.03.30 19:3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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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AI)가 창궐한지 두 달 하고도 보름. 전국 400여 농장에서 1,000만수 이상의 가금류가 살처분됐지만 아직도 살처분 보상금 지급은 원활치 못한 상태다. 그러나 보상금이 완전히 지급된다 해도 우선 계열사가 수령한 후 위탁농가에 사육비를 정산하는 체계라 합당한 보상을 받기 힘들다는 것이 농민들의 더욱 큰 불만이다.

살처분 보상금을 농가가 아닌 계열사가 수령하게 되는 이유는 농가가 계열사와 맺은 ‘양도담보 계약’ 때문이다. 이 계약서에 따르면 위탁농가가 사육하는 가축은 계열사와의 사육계약 이행 보증 등을 위해 사육기간동안 그 소유권을 계열사에 양도하게 된다.

보상금을 수령한 계열사들은 각각의 기준에 따라 살처분 농가에 일령에 따른 사육수수료를 정산해 지급한다. 농민들의 불만은 여기서 발생한다. 계열사가 자의적으로 보상금을 나누는 과정에서 보상금의 부당한 착취가 발생한다는 것.

▲ 살처분 보상금 수령을 두고 계열사와 농가의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살처분 후 깔짚만이 남아 있는 전북 부안의 한 양계농장.

2008년 AI로 32일령 오리 1만3,000여수를 살처분했던 농민 A씨의 경우 계열사가 살처분 보상금으로 6,200여만원을 수령했다. 계열사는 A씨에게 사육수수료로 1,200여만원을 정산해 주고 병아리·사료값으로 4,000여만원을 가져갔는데, 계약서상 각각 900원, 420원이었던 병아리·사료 단가를 100원 이상씩 올려 책정했다. 여기에 남은 1,000만원 가량의 보상금을 농가와 다시 절반씩 나눴다. 당시에는 이처럼 잔여금액을 절반씩 나눈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명기된 업체도 많았다.

계약서가 개선된 지금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25일령 오리 1만수를 살처분한 전북 부안의 농민 B씨는 “살처분 보상과 사료폐기 보상을 합쳐 3,300만원 정도 나올 것 같은데 회사에서 가져갈 병아리·사료값을 계산해 보니 2,950만원이다. 깔짚, 기름값, 약값 등을 따져보면 1,200만원은 받아야 타산이 맞는데 남은 300만원으로는 크게 밑진다. 이것도 단지 내 계산일 뿐, 계열사가 얼마나 더 뺏아가고 정부가 얼마나 더 보상을 깎을지 알 수 없다”고 한탄했다.

농민들 사이에는 계열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다. AI가 발생하면 피해보는 것은 농민 뿐, “보상금을 받아 제 몫부터 챙기는 계열사는 오히려 돈을 벌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사실상 깔짚, 기름값, 약값 등의 비용은 고스란히 농가의 부담이고, 보상금이 감액돼 금액이 모자라는 경우엔 오히려 농가가 계열사에 자비로 보충해 줘야 하는 실정이다.

부안의 살처분 농민 C씨는 “규모가 작은 계열사는 더 심각하다. 농가마다 사육비도 밀려있고 부도나서 도망가는 회사도 많은데 그 손에 보상금이 들어가면 농가가 절대 제대로 못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보상금을 농민이 수령하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농민들이 돈을 숨길수도 있다. 농가에는 얼마, 계열사에는 얼마 애초에 보상금이 분배돼 나올 수 있도록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양도담보 계약’에서부터 계열사의 자의적인 살처분 보상금 배분까지 끊임없는 비난과 불평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적극적인 항의는 하지 못한 채 계열사의 뜻에 따르고 있다. 소위 계열사의 ‘눈 밖에 난’ 농가에 각종 불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들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 가금산업에 비약적인 안정과 발전을 가져왔다는 계열화 사업의 지극히 어두운 이면이다.

농식품부 이준원 차관보는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앞으로 AI 발생시 해당 계열사에도 지원 제한, 과태료 부과 등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농가로 돌리던 AI 발생 책임을 또다시 기업으로 돌린 것도 논란이지만 농민들은 한목소리로 “계열사에 지워진 부담은 무조건 농가에게로 내려온다”고 걱정했다. 계열사-농가 간의 고질적인 ‘갑을 관계’가 고쳐지지 않고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뜻하지 않은 재해로 생업의 기반 자체를 위협받게 됐지만 정부로부터 납득할 만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가금 농가들은 계열화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또한번 신음하고 있다. 구구절절 농민들의 불만을 자아내고 있는 AI 보상제도와 더불어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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