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쌀 관리도 엉망인데 쌀 관세화는 언감생심!

  • 입력 2014.03.28 16:00
  • 수정 2014.03.28 16:25
  • 기자명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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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2008년 4월 어느날 늦은 밤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수입쌀 실은 트럭이 어느 곳으로 가고 있다는 제보였습니다. 가까운 농민회원들을 깨워 주변지역을 뒤진 끝에 으슥한 양계장 창고에서 물건을 내리고 있는 5톤 트럭을 찾아냈습니다. 트럭에는 중국산 쌀이 가득실려 있었고 창고에는 국산쌀이 쌓여 있었습니다. 창고주변에 중국산 쌀포대가 널려 있는 것을 통해 이곳이 바로 ‘포대갈이’ 현장임을 알아 차렸습니다.

미곡상인이 양계장을 빌려 포대갈이를 꾸준히 해온 것이고 그 미곡상은 우리 지역 사람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수입쌀 포대갈이를 가까운 사람이 가까운 곳에서 해오고 있다는 사실에 농민들도 놀랐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수입쌀은 꾸준히 들어오는 데 외국산 밥을 먹어본 사람을 찾기 어려운 이유를 찾은 것입니다. 수입쌀은 포장이 뜯긴 후 국산쌀 포대에 담겨 시장에 풀린 것입니다.

이런 포대갈이는 단지 예측이 아니며, 심각성은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8년 18건에 불과했던 쌀 부정유통 적발건수가 2년후에는 194건으로 늘어난 사실만 보더라도 쌀 부정유통은 흔한 일이 되버린 것입니다.

2013년 최소시장접근물량(MMA)으로 수입쌀이 38만톤이 들어왔습니다.

과연 이런 수입쌀은 어디로 갔을 까요? 앞선 경우처럼 불법적 포대갈이도 있겠지만 합법적 포대갈이도 있습니다.

합법적 포대갈이는 포대에 수입산 쌀의 함량을 착실히 표시해주는 방법입니다. 최근 국민적 충격으로 떠오른 ‘이천농산’쌀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천쌀로 알고 사왔는데 표시를 자세히 보니 국산쌀은 5% 밖에 없는 수입쌀이었던 것입니다. 황당하게 사기당한 것 같지만 엄연한 합법입니다.

문제는 표시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5%가 수입쌀이고 95%가 국산쌀이라고 거짓으로 표시해도 소비자는 그 표시를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95%가 수입쌀이라고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불가한 현실입니다. 법적 과학적 허점을 틈타 혼합미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고, 이런 불법·합법 포대갈이는 모래밭에 물빠지듯 수입쌀을 흔적없이 사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수입쌀이 한국시장에 진출하는데 포대갈이와 혼합미처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미지 좋지 않는 미국쌀 중국쌀은 한국시장에 소리없이 자리를 잡아 왔습니다.

지난해에는 비소 섞인 미국쌀이 문제가 되어 일시 판매중단 사건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독성물질로 인한 국민들 불안이 높아졌지만 미국쌀은 거리낌없이 잘 팔렸습니다. 국산쌀에 비소 섞인 미국쌀이 팔려 가는데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문제는 이런 혼합미제도를 정부가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UR협정 타결이후 쌀 수입이 20년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우리쌀을 보호하고 소비자들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기는 커녕 수입쌀 부정유통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혼합미 장려는 국산쌀 내에서도 일어났습니다. 2010년부터 정부는 햅쌀과 묵은쌀도 섞어서 팔도록 권장하면서 쌀시장을 혼탁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신구곡 혼합미마저 도입한 정부의 속셈은 쌀값 하락이었습니다. 최근 3년간 쌀 생산량 감소로 인해 쌀값이 들썩이자 정부가 보유한 구곡을 반값에 풀면서 혼합미를 유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기획은 적중했습니다. 혼합미는 저가미 시장을 넓혀 쌀값 인상을 가로 막은 것입니다.

정부는 유통을 투명하게, 시장을 정직하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쌀 시장은 최근 몇 년간 부정유통의 천국으로 변하고 있는데 당국자는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포대갈이, 혼합미의 피해는 국산쌀의 신용도와 이미지를 떨어뜨려 쌀값 하락과 농민소득 감소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피해는 소비자에게도 그대로 전가됩니다. 똑같은 돈을 주고도 질 낮은 수입쌀을 사먹고, 3년된 묵은쌀을 사먹고 있습니다. 갈수록 밥상 안전보장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쌀 관세화를 말하기 전에 현재의 수입쌀 관리라도 똑바로 해서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얻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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