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하는 심정, 이루 말할 수 없어”

[인터뷰] 박근현 음성군농민회 부회장

  • 입력 2014.03.16 11:3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1만5,000수. 음성군농민회 박근현 부회장이 이번 AI로 예방적 살처분한 닭의 머릿수다. 기르던 닭이 많았던 만큼 그 빈자리도 크다. 휑뎅그레 비어버린 박 부회장의 농장 주변에는 얄궂은 까치 울음소리만이 째랑째랑 울리고 있었다. 빈 농장에 습관적으로 신발을 소독하고 들어선 박 부회장은 담담한 어조로, 그러나 때로는 격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살처분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권순창 기자>
 

- 기르던 닭을 일시에 살처분하게 돼 상심이 클 것 같다. 자세한 경위를 설명해 달라.
▶지난달 17일 여기서 1.8km 떨어진 오리농장에서 AI 의심신고를 해 양성 판정을 받자 21일에 이곳 11만5,000수를 모두 살처분했다. 닭은 보통 도체중 1.8kg 이전에 출하하는데 살처분 당시 닭들은 29일령 1.5kg 정도로 제법 많이 키운 상태였다. 평소 농장 출입시 소독과 의복 구분을 확실히 했고 AI 소식이 들리고부터는 농민들끼리 팀을 구성해 농장 주변 100m에 소독약을 살포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이렇게 돼버렸다.

- 농장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현재 겪고 있는 피해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당장 먹고 사는 게 걱정이다. 처음엔 사고가 난 것만 속상하고 걱정됐는데, 입식이 제한되고 사태가 끝이 안보이니 현실이 보인다. 내 경우엔 한 파스(주기) 출하했을 때 수익이 3,000만~4,000만원이다. 농장을 9억원을 들여 지어 아직도 대출금이 4억원 남아있으니 이자만 해도 한 파스값이다. 생활비는 생활비대로 들고, 농장 유지 자체가 힘들어진 상황이다. AI 피해농가 생계안정자금이 닭의 경우 살처분 수수 4만수 미만인 농가에만 지급된다는데, 다른 건 몰라도 생계안정자금만큼은 모든 피해농가에 지급해 줘야 한다.

- 살처분을 할 당시의 심정은 어땠나.
▶그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똑같이 생명을 거두는 거지만 잘 키워서 사람들 식탁에 올리는 것과 그냥 묻어 죽이는 것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멀쩡한 생물을 가져다 묻는 걸 보자니 마냥 속상하고 기분이 안좋았다. 텅 빈 계사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잡념만 생긴다.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의욕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다시 입식해서 열심히 키웠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그런 것들이 막막한 것이다. 6년 전 처음 농장을 시작할 때 희망을 품고 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가 됐다.

- 정부의 AI 대응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방역을 위한 인력과 비용이 너무 무의미하게 분산돼 있다. 도로마다 설치된 차량소독시설은 차량만을 소독할 뿐 정작 땅에 내려 움직이는 사람은 소독하지 못한다. 개별 농장의 차단방역에 더 집중해야 한다. 또 육계는 34일, 육용오리는 42일 정도로 출하 주기가 짧아 질병의 위험성이 낮다. 사육기간이 긴 종계와 산란계 농장에 검사와 보조금을 집중해 건강하고 깨끗한 산물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지금보다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