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9회

  • 입력 2014.03.07 10:23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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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으로 삼촌은 큰집의 아재 둘과 함께 산으로 갔다. 결국 삼촌은 탈 없이 전쟁을 넘기고 살아남았지만 아랫말에 살던 이들 둘과 이웃마을의 여럿이 끌려가서 목숨을 잃었다. 싸리고개에서 목숨을 잃은 보도연맹원 숫자가 삼백 명이라고도 하고 칠백 명이 넘는다고도 했다.

지서장을 일가로 둔 덕에 정씨네들은 목숨을 건졌는데, 아버지는 결국 겨울 피난길을 따라가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피를 한 사발도 넘게 토하고 긴 숨을 몰아쉬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선택을 따로 불렀다.

“선택아, 공부를 해야 한다. 당장 고등공민학교엘 들어가구, 졸업하믄 서울로 가거라. 서울 가면 널 보살펴 줄 사람이 있다.”

아버지는 눈을 뜬 채로 죽었다. 할아버지는 전쟁과 아버지의 죽음을 치르며 아주 폭삭 늙어버린 것 같았다. 겨울 피난을 갔다 오고 선택은 시오리를 걸어야 하는 고등공민학교에 들어갔다. 선택이 공부하는 데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입학을 주장하였고 선택을 국민학교에 넣어주었던 할아버지가 오히려 마뜩찮아 했다.

“그깟 신학문을 자꾸 배워서 뭣하려느냐? 언문 읽구 산수나 허게 됐으면 서당에서 소학꺼지라도 읽힐 일이지, 에헹.”


그러나 이번에는 어머니와 삼촌이 합세하여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었다. 삼촌은 더욱 말이 없이 집안 일만 억척스럽게 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세 번씩 십리 산길을 걸어 나무를 해오곤 했다.

“저도 솔직히 여기 살기 싫어유. 시상에, 서울 살었으믄 그렇게 생목숨덜얼 잃었겄시유? 배운 기 없으니 달리 옴치고 뛸 수가 읍넌 신세지만, 선택이꺼지 그렇게 맨들 수야 읍지유. 핵교서두 이렇게 공부 잘허고 똑똑헌 애럴 왜 이리 늦게 입학을 시켰냐구 안 혀유?”

선택은 국민학교에서 늘 일, 이등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는 공민핵교꺼지 밖에 없지만, 공부만 잘 혀라. 삼춘이 고등핵교넌 서울로 보낼줄 텡께.”

삼촌의 말에 할아버지는 다시 놀랐다.

“서울이라니, 늬 성이 그렇게 된 걸 보구두 서울 타령을 허는 게냐? 장손이 가업을 이을 생각을 혀야지, 난 선택이 서울로는 못 보낸다. 글고 지금 우리 살림에 서울살이가 가당키나 허냐?”

사실 선택의 집 살림은 마을의 대성으로 사는 정씨 일가 중에 몹시 처지는 축이었다. 참봉댁이라고 불리는 큰집은 도조로 들어오는 쌀섬을 쌓기 위해 따로 커다란 창고가 있을 정도로 부자였고 몇몇 다른 일가도 부잣집 소리를 들었지만 선택네는 이미 오대조 위에서 갈라져 나온 방계인데다 선대에서 땅을 늘리기는커녕 줄여 내려온 터라 옹색한 편이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병으로 논까지 몇 뙈기 팔아먹은 바람에 부치는 논밭은 대개 문중 땅이거나 제사를 모시는 위토였다. 행랑에 사는 필성이네도 주로 남의 집 일을 다니거나 소작을 부치고 살면서 행랑채에 사는 값으로 가끔 일을 도와주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농사일은 오롯이 어머니와 삼촌 몫이었고 선택 또한 늘 일을 거들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어머니와 삼촌이 적극적으로 공부를 권하자 선택은 왠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마음속으로야 정말 공부를 하고 싶었다.

“삼춘, 나 공부 잘 허믄 진짜루 서울꺼지 보내줄라나? 서울은 모든지 엄청 비싸다구 허던데, 우리 집에 돈이 있나?”

“걱정 말어라. 내가 우리 장조카 공부두 못 시키믄 어찌 나중에 형님 얼굴을 보라구? 늬는 아무 걱정 말구 공부만 혀라. 아부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늬 공부 길을 많이 닦어놓으셨드라.”

그러면서 삼촌은 먼 하늘을 바라보며 궐련을 뻑뻑 빨아 연기를 내뿜었다. 그렇게 해서 선택은 전쟁이 터진 이듬해 중원고등공민학교, 지금으로 치면 중학교 과정에 입학했다. 열여섯 살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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