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폐업지원을 해 달라”

AI 살처분 보상금, 터무니없는 감액 기준
지급 시기도 불확실…농가 불만 폭주

  • 입력 2014.03.02 19:15
  • 수정 2014.03.30 19:4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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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농가의 살처분 보상금 지급에 제한장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뜩이나 불만족스럽던 살처분 보상금에 축소의 여지가 점점 늘어나면서 농민들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그나마 보상금 지급 자체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피해농가들은 하루하루 애만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말도 안되는 감액기준”

정부는 AI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발병농가 반경 3km로 확대 실시하고 있다. 살처분 후 정밀검사 결과 AI 음성 판정이 나오면 살처분 보상금을 기준시세의 100%로 수령할 수 있지만 양성 판정이 나올 경우 80%만 수령하게 된다.

여기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동필)는 지난달 17일 추가로 보상금 감액 기준을 만들었다. AI 양성 판정을 받은 살처분 농가가 발병 의심신고를 증상 발현 2일째 이후에 했을 경우 살처분 보상금은 20%가 더 감액된 60%를 수령하게 된다. 5일째 이후에 신고한 경우엔 40%,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엔 20%만을 수령할 수 있다.

또한 ▲가축에 대한 검사·주사·투약 ▲역학조사 협조 ▲소독 ▲가축의 격리 및 이동제한 ▲살처분 이행의 5가지 조치사항 가운데 하나를 어길 때마다 20%씩의 감액이 이뤄진다. 외국인근로자 고용 미신고 등 검역조치를 미이행한 경우는 무조건 최저 지급금액인 20%만을 받을 수 있다.

▲ 농식품부가 AI 살처분 보상금 감액 기준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그마저 제때 지급이 되지 않아 농민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 사진은 세종시 전의면에서 이동차량을 소독하는 모습. <홍기원 기자>

양성 판정을 받은 농가만을 대상으로 한 기준이지만 농가별 감액 피해는 클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충북 피해지역(진천·음성)의 경우 예방적 살처분 농가 가운데 80% 이상이 양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천의 살처분 농민 A씨는 감액 기준에 대해 “말도 안되는 거다. 증상도 뚜렷하지 않은걸 어떻게 알고 칼같이 신고를 하나. 자기들 멋대로 예방적 살처분을 해 놓고 양성이 나오면 거의 보상금이 깎이게 되는 구조다. 이건 보상금을 아끼려고 하는 것밖에 안된다”고 불평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AI처럼 확산력이 크고 피해가 큰 질병은 국가의 방역정책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지자체는 물론 농민들의 협조가 필요하고, 각자의 책임감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라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오리의 경우 닭보다 증상 파악이 힘들다는 데 동의하고 추후 기준 수정을 검토할 의사를 내비쳤다.

살처분 보상금을 기준시세의 80%로 받을 경우 계열사에 사료값·병아리값을 지불하고 나면 딱 떨어진다는 것이 농민들의 설명이다. 60% 이하로 받게 된다면 계열사에 자비를 보태 납부해야 한다. 보상금 감액은 피해농가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농식품부는 ‘살처분 보상금 삼진아웃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AI가 반복 발생하는 농가에 대해 1차 20%, 2차 50%, 3차 80%로 보상금을 대폭 감액한다는 내용이다. 농식품부가 계속해서 재난의 책임을 농가에 전가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는 배경이다.

진천의 또다른 살처분 농민 B씨는 “보상금을 주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농민 의견을 전혀 듣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자기들끼리 정해놓고 적용하는 것은 계열사와의 갑을 관계보다 더한 일”이라고 탄식했다.

보상금 수령은 언제쯤?

현 시점에서 피해농민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그나마도 지급되지 않고 있는 살처분 보상금이다. 충남 일부 지역에서 50%의 살처분 보상금이 선지급되는 등 지역별로 편차는 있지만, 충북 진천의 경우 지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익이 막힌데다 보상금 지급마저 차일피일 미뤄지자 피해농민들은 당장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대출금액이 큰 농가는 불어가는 이자도 걱정이고, 무엇보다 새 학기가 닥쳐 학생을 자녀로 둔 농가는 더욱 막막하다.

대학생, 고등학생의 두 자녀를 둔 한 농민은 “당장의 생계가 걱정이다. 주변엔 나보다 더 힘든 피해농민도 많다. 어떻게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본적인 생계라도 가능하도록 보상금을 선지급해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진천군청 관계자는 “농가와 계열사간에 살처분 보상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아직 합의가 덜 돼서 지급이 늦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달 중으로 50% 가량의 보상금이 선지급될 것이고 국비가 완전히 내려온다면 70~80%까지도 선지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지급이 완료될지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에서 살처분 보상금의 20%를 지자체에 부담시킨 데 따른 지자체의 재정 부담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 진천군의 경우 군 예비비 10억원을 고스란히 살처분 보상에 쏟아부어야 할 상황으로, 현재 도청으로부터 5억원의 지원을 유치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으로 속절없이 토막나는 보상금액이 그나마도 원활히 지급되지 않으면서 피해농가들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럴거면 차라리 폐업지원을 해달라”는 농민들의 말을 결코 빈 말로 들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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