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경업관계’ 판단, 이사회가 결정

이사회 따라 유권해석도 천차만별

  • 입력 2014.02.23 20:05
  • 기자명 김명래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농조합법인에 참여하고 있으면 해당 지역 농협 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협동조합법의 유권해석이 논란이 되고 있다. 농협 임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영농조합법인 임원의 직위를 포기하거나, 농협과 경쟁이 된다고 인정되는 사업을 그만둬야 하는 것이다.

전북 익산의 홍환표씨는 한 영농조합법인의 이사다. 홍씨는 해당 영농조합법인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농협에서 팔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농협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홍씨가 농협 임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영농조합법인 이사 직위를 포기해야 한다. 농협이 홍씨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영농조합법인을 경쟁업체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매모호한 협동조합법으로 인해 홍씨처럼 농협 임원 선거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농협이 경쟁상대로 분류하고 있는 것은 금융, 산림조합, 예금·보험, 대부, 비료관리, 농약관리, 석유판매, 사료관리, 종자산업, 양곡관리, 축산물 위생관리, 인삼류 제조업, 장례식장업 등 17개 업종이다. 이와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는 자가 농협 임원을 겸직할 수 없도록 대통령령으로 제한을 둔 것이다. 문제는 농업협동조합법 시행령 제5조의3제1항 <별표 2다>. ‘이사회가 조합, 공동사업법인 및 중앙회가 수행하는 사업과 실질적인 경쟁관계에 있다고 인정한 자가 수행하는 사업에 대해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다시 말해 실질적으로 농협과 경쟁관계에 있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조합 이사회의 결정에 달린 것이다. 지역농협들이 농협의 경쟁관계를 일반사업장과 영농조합법인까지 폭넓게 적용하고 있어 이들의 임원진출을 농협이 막아서고 있는 셈이다.

▲ 등기부등본에 등록된 사업과 지역농협 경제사업이 겹쳐 농협과 경업관계에 놓인 정경수씨. 정씨가 대표이사를 맡아 운영하는 영농조합법인의 사업이 경업관계에 놓였다는 이유로 농협 임원감사 등록에서 제외됐다.
전북 익산 김영재씨는 “정부가 영농조합법인 설립을 권장해 지역에 많은 영농조합법인들이 있고, 이들이 마을과 작목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조합과 경쟁관계에 있다고 규정해 영농조합법인을 앞장서서 만들었던 이들이 농협 임원에 지원조차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협동조합을 바탕으로 법인까지 설립한 이들에 대한 제약은 결국 조합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을 임원으로 세우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한 농민은 “협동조합법이 넓은 의미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지역 조합 이사회에 일임한 사항인데 농협이 정관이나 사업자등록증의 업무를 핑계로 꼬투리를 잡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농협법 시행령에는 농협과 경쟁관계에 있는 사업이라고 간단하게 명시돼 있고 결국 세부 결정은 이사회 판단을 따르기로 해 조합 이사회마다 다른 유권해석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농민들은 애매한 규정이 오히려 영농조합법인과 농협의 갈등을 부추긴다며 경업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부의 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김영재씨는 “사례를 통한 실질적인 경업관계에 대한 유권해석이 필요하고 실제 사업에 대한 확인절차도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법인을 통해서 생산·판매한 생산물에 대해서는 협업체계로 인정해 주는 조항이 반드시 신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업금육정책과 관계자는 “농협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경쟁사업의 농협 임원 진출을) 지역조합 이사회에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가이드라인을 정하는데 조합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일일이 정리해 주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악용될 소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서 수정해 나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편 영농조합법인이 농협 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사례도 있다. 익산 A 농협은 영농조합법인에서 운영하는 농기계 임대사업에 대해 “농협과 경업관계에 있지 않다”고 해석했다. 결국 이들 법인의 임원들도 농협 임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이 이사회를 통과했다.

이 농협의 경우에는 “영농조합법인이 경쟁 사업을 하고 있더라도 규모가 작거나 농협이 운영하는 사업에 피해를 줄 정도가 아니라면 경업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명래 기자>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