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7회

  • 입력 2014.02.23 19:08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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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선택이 열 네 살 되던 해,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일 년 전이었다. 초겨울 무렵이었다. 갑자기 집안이 술렁거렸다.

“전보가 왔넌디, 우째 심상치 않유. 형님헌테 뭔 일이 있는 것 같어유.”

손바닥만 한 누런 종이를 든 삼촌이 급하게 삽짝으로 들어섰다.

“이게 뭣시라고 쓴 거냐? 눈이 어두워 보이질 않는다.”

“급래요 영등포 병원 장자라고 써 있구만유. 형님이 병원에 있으니께 얼른 오라는 말 아녀유?”

할아버지는 들었던 담뱃대를 떨어뜨렸다.

“야가 어디 좀 아프다고 오라고 헐 인사가 아닌데, 필시 무슨 일이 있나보구나.”

할아버지의 수염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거기도 사람이 있는데, 집에 전보를 친 거 보믄 보통일이 아닌 거 같어유. 얼른 올러가봐야쥬.”


거기 사람이라는 말을 할 때 삼촌은 뒤에 서 있는 선택을 힐끔 돌아보았다. 그 무렵에는 이미 선택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서울 여자가 있다고 했다. 작년에 할아버지가 서울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끔 서울로 출타를 했다가 열흘이고 보름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세상 구경을 간다고 했다. 해방 전에도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박람회라는 데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을 다녀온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불렀다. 여간해서 사랑으로 드는 적이 없던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말을 하는 동안 내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에미두 짐작은 했을 거시다. 선택 애비가 벌써 십년 가차이 서울에서 저러고 있는데, 어찌 혼자 제 몸을 건사했겠느냐. 나도 네 생각을 하며 심중에 맺히는 게 있어서 기어이 이번 서울 발길에 찾아보았느니라. 너한테 숨길 수 없어서 그대로 이야기헌다. 살림을 하고 있더라. 영등포라나 하는 동네에서 애옥살이겉은 살림을 허는데 피붙이는 없드라.”

다음 날 어머니는 이불 호청을 산더미 같이 뜯어서 하루 종일 빨래를 했다. 무서운 얼굴로 입을 다문 채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는 어머니 곁에서 선택은 자꾸만 분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짐작은 했던 일이었다. 큰 집에서 머슴 사는 바보 우배가 언젠가 아버지가 서울에서 새 장가를 들었다고 히히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선택은 부아가 치밀어서 돌을 주워 우배에게 던졌다. 아주 머리를 맞아서 깨뜨리고 싶었지만 겨우 목덜미를 맞추었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는 우배가 안쓰럽던 마음이 그 뒤로는 싹 사라져버렸었다.

그런데 서울을 다녀온 할아버지에게서 사실을 듣고 나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피어올랐다. 마음속으로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버지가 술청에서 취해 주정을 부리는 ‘불상놈’들과 자꾸 겹쳐보였다.

할아버지와 삼촌이 전보가 온 다음날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틀 후에 아버지가 삼촌 어깨에 팔을 두른 채 절룩이며 돌아왔다. 아버지의 모습은 놀라웠다. 제복을 입은 멋진 모습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깎은 짧은 머리에 양 볼은 움푹 패였고 눈은 무언가 잔뜩 겁을 먹은 듯했다. 오자마자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깔고 누웠다.

“어여, 우배 불러다가 개 한 마리 잡거라. 사람을 어찌 저리 산송장을 만들어 놓았누?”

집안 어른들이 모여들었다. 큰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 모이던 먼 동네 어른들과 아낙들도 와서 집안은 사람으로 그들먹해졌다. 할아버지는 사랑에서 집안 어른들이 묻는 말에 대답하느라 이미 한 이야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고 있었다.

“글쎄, 지은 죄두 없이 옥살이를 여섯 달이나 했다지 뭐여? 여러 집안 으른덜 보기에 챙피한 일이지만 우리 애비가 기관산가 뭔가를 했잖여. 거기서 일허는 사람끼리 뭔 회를 맨들었든 모냥인데, 그기 새 정부럴 반대하는 모의를 했다넌 오해가 있었던 기라. 그기 아닌데, 주의자덜이 워낙 많으니께, 그런 오해를 받어서 고만 감옥꺼지 가게 된 거라네, 참.”

할아버지는 연신 곰방대에 불을 붙여가며 오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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