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서 길어 올리는 ‘봄의 기운’, 겨울미나리

사진이야기 農寫 수확은 외국인?선별은 할머니 … 고된 노동 감내해 온 이들

  • 입력 2014.02.16 22:22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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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섬주섬 방수작업복을 겉옷 위에 껴입었다. 행여 모를 일에 대비해 물에 젖으면 안 될 휴대폰과 지갑 등은 미리 꺼내 논둑에 올려놓았다. 지난 2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의 한 미나리꽝. 그곳에선 이미 겨울미나리 수확이 한창이었다. 파릇파릇한 봄의 기운이 물이 가득 괴어 있는 논 위에서 생기를 띠고 있었다.

미나리를 심은 논, 미나리꽝으로 한 발 두 발 내딛었다. 진흙의 물컹물컹한 감촉이 장화를 통해 느껴졌다. 허리춤까지 담수해 놓은 물의 수압에 의해 헐렁했던 방수작업복은 ‘쫄쫄이’ 바지처럼 몸에 착 달라붙었다. 뭐라 표현하지 못할 미나리꽝의 차디찬 기운이 두 다리를 감싸고돌았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나 냉기 가득 품은 날 선 바람에 코끝은 벌개졌고 바짝 긴장한 얼굴은 얼얼했다.

게다가 한겨울 물속을 헤매는 발끝엔 시린 통증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평화동에서 미나리를 수확, 선별, 포장해 각 지역으로 출하하는 미호리 영농조합법인의 박진영 대표는 “내복에 솜바지까지 껴입고 들어가도 추운 곳이 미나리꽝”이라고 귀띔했다.

미나리 수확에 나선 일꾼은 5명, 모두 외국인 노동자였다. 가깝게는 중국, 멀리는 캄보디아에서 건너온 외국인들이 한때는 우리 농민들이 짊어졌던 고생스런 일들을 대신하고 있었다. 삽으로 미나리를 캐 올리고 뿌리에 붙은 진흙더미를 털어내고 한 아름 모아 놓은 미나리를 논물에 담금질 하고…. 생면부지의 땅에서 미나리를 걷어 올리는 이들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추위와 맞서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같은 방수작업복을 입고 무모하게 미나리꽝에 뛰어든 내게 그들이 처음 건넨 말 또한 “추워요”였다. 띄엄띄엄 내뱉은 어색한 한국말 속에서 이들이 감당해내고 있는 고된 노동이 물씬 묻어났다. 수면 위로 둥그런 동심원의 파문을 일으키며 묵묵히 제 할 일에 나선 이들.

전주시미나리연구회 심정화 회장은 “물미나리 혹은 겨울미나리라 불리는 재래미나리 수확에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력은 절대적”이라며 “채취 인력의 98% 정도가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심 회장은 “미나리 수확이 3D 중의 3D라 여겨지기에 더욱 그렇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힘겹게 걷어 올린 미나리는 미나리꽝 인근의 공동선별장으로 옮겨졌다. 골라내고 다듬고 씻는 작업의 시작이다. ‘ㄷ’자 모양으로 배치된 선반 위에 갓 수확한 미나리가 수북이 쌓이자 선별 경력 1~20년을 자랑하는 눈썰미 좋은 할머니들이 ‘못 쓰는 놈’과 ‘좋은 놈’을 순식간에 골라내 한 다발씩 묶는다.

올해 일흔 셋의 한 할머니는 “꽝꽝 언 미나리를 자주 매만지니 손이 시려 죽겠다”며 뜨거운 물이 담긴 양철통에 손을 잠시 담궜다. 시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한 손의 통증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렇게 추려내고 다듬어 한 다발씩 묶인 미나리는 세척 작업을 거쳐 10다발씩 소포장 돼 논산, 광주, 순천, 대전 등지로 출하된다. 현재 미나리 시세는 2,200원 선. 손익분기점에 이르려면 최소 2,500원 선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게 심 회장의 설명이다. “한 15년 전만 해도 미나리가 농가의 주 수입원이 될 정도였는데….” 말끝을 흐리는 그의 말처럼 논농사에 이은 2모작 재배로 농가수입에 한 몫 톡톡히 했던 겨울미나리 농사도 지난한 세월의 흐름을 비껴가진 못했다.

아주 어려운 일을 능수능란하게 한다는 뜻의 ‘선 너머 아가씨 미나리 다듬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조선시대 당시 전주 지역에 서원이라는 곳이 있었고 ‘선(서원) 너머’란 현재 평화동 인근의 미나리꽝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 명맥을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그 ‘선 너머’에는 엄동설한의 추위와 맞서며 미나리를 캐 올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또 시린 손 녹여가며 미나리를 다듬던 그 옛날 ‘아가씨’들이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과 함께 긴긴 겨울을 건너고 있는 농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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