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떨군 똥 한 덩이

  • 입력 2014.02.16 19:30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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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추위를 보내고 나니 영동지역엔 폭설이 내려 걱정이라고 한다. 강릉지역엔 한길이 넘게 눈이 쌓여 사람 통행도 어려운 지경이란다. 그래도 봄은 온다. 얼었던 땅이 녹으며 발밑에 촉촉한 습기가 느껴지면 봄은 얼음장 밑에서 부터 오는게 확실하다.

그렇게 자연은 제 스스로 때를 맞추고 힘을 쏟아낸다. 때가 무르익어야만 움이 트고 꽃이 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억지를 부린다. 특히 농사에서 억지는 사람을 골병들게 한다. 그 억지란 것이 자본에 의한 상품화다. 그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짓을 멈추지 못한다. 이유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억지가 없다. 골병드는 일을 선택해 하면서 살기위해 한다는 이 억지스러움이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회 그런 농촌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려하고 있다.

가지치기를 하려고 바쁘게 챙겨 나오다 보니 아침 변을 보지 못했나 보다. 아랫배를 움켜쥐고 과수원 가장자리에서 볼일을 본다. 요즘은 농촌에도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돼 모두가 변을 보고 물에 섞어서 하천으로 흘려보내고 만다. 당장 내 눈앞에선 오물이 없어지지만 결국 그 오물은 내가 마시는 물에 들어가는 구조속에 있다.

그러나 밭귀퉁이에 떨어진 똥은 우주의 섭리 속에 들어간 것이다. 혹여 배고픈 고라니의 한 끼가 될 수도 있겠고 눈앞에서 까작대는 까치들의 요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으면 온갖 똥파리류, 딱정벌레류들이 파먹거나 집을 짓고 알을 놓거나 해서 우주 속에 먼지로 사라질 것이다. 그래야만 지속가능한 우주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걸 잘 안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다. 단절된 수세식 화장실의 구조가 더 편안하다. 그러나 단절된 구조속에서 편안함을 누리는건 자본뿐이 없다.

내가 눈 똥은 상품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이 과수원 언저리에 자리한 내 똥은 운수 좋은 똥이다. 상품은 아니 될지언정 생명을 만드는데 쓰일 것이다. 어떤 것들의 집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것들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버린 것이 지구를 움직이고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이다.

농사가 그리로 돌아가야 한다. 억지스러움과 철없음에서 놓여나야한다. 중국의 농업경제학자 溫鐵軍(원테쥔)은 북한의 농업이 망한 배경으로 지나친 석유 의존형 농업이었음을 들었다.

어느 정권도 이 부분에 관심 갖지 않겠지만 사실은 자본의 고리를 끊어내는 농사가 되지 못하는 한 농산물의 상품화도 가속화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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