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살처분 피해 막심, “와 닿는 보상 없어”

불필요한 피해 확대… 보상금은 계열사로

  • 입력 2014.02.16 19:1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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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대한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동필)의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은 살처분에 있다. 살처분 범위를 발생농가 반경 500m에서 3km로 확대하고 지자체에 그것을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식품부는 AI 확산 차단과 조기종식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 설명하지만 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농민들과 현장 담당직원들의 중론이다. 무분별한 살처분 확대로 무고한 농가의 희생이 늘어가는 가운데 농민들은 실질적으로 농가에 도움이 되는 보상은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멀쩡한 닭·오리, 묻어야 하나

충북 진천의 양계농민 A씨의 계사는 AI 발생농가로부터 600m 거리에 있다. 500m 이상 떨어져 있어 원래는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해당되지 않지만 살처분 범위를 확대 적용함으로써 3만6,000수의 닭을 살처분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A씨는 기르는 닭의 상태가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고 강조했다. 아무런 징후도 없고 심지어 기존의 폐사량에도 못미치는 멀쩡한 닭들을 살처분하려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는 “살처분 자체도 문제지만 살처분 후 3개월 이상 입추를 안 시켜준다는 것은 농장에서 손을 놓고 떠나라는 말밖에 더 되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 무분별한 살처분 확대가 농가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얼마전 살처분을 마친 한 오리농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부산스레 움직이고 있다. 사진은 취재 농가와는 무관.

충북 영동의 양계농민 B씨는 “육계농장은 오리나 종계에 비해 사육 주기가 짧아 발병확률이 적은데 살처분을 일괄적용한다면 사육수수가 많은 만큼 경제적 피해도 가장 크다”고 불평했다.

그는 “AI는 결국 감기다. 한 지역의 살처분이 일주일쯤 걸리는데 살처분 하는 동안 바이러스가 가만히 머물러 있겠나. 살처분은 결국 보여주기식이고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 오히려 축산업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농민들은 살처분을 집행하는 직원들을 보고 “마치 자기 닭·오리 가져가는 것처럼 갖다 묻어버린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한 마리 한 마리 자신의 멀쩡한 가축이 희생되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야속한 심정이 묻어난다.

현실적인 보상은 없다

충북 진천 C씨의 오리농장은 이미 1만수 가량의 살처분이 완료됐다. 13년 오리를 키우면서 처음 겪은 날벼락이다. 살처분한 오리는 28일령으로, 손실 규모는 수당 8,000원 정도다. 물론 오리의 상태는 건강했고 사후 검사 결과도 음성으로 판정됐다.

지난해 빚을 내서 농장을 확장해 때가 되면 이자를 납부해야 하고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의 등록금도 충당해야 하는데 최소 3개월간 입추까지 제한돼 막막한 상황이다. “아들 같으면 군대라도 보내겠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C씨의 표정이 씁쓸하다.

농식품부가 살처분 농가 지원대책을 세워 보상 및 지원을 하고 있지만 C씨는 실질적으로 농가에 도움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설명한다. 입식제한기간을 고려해 지급되는 ‘생계안정자금’은 사육수수가 적은 농가의 경우 혜택이 미미하고 재입식시 융자 지원되는 ‘가축입식자금’은 말그대로 융자인데다 농촌에 허다한 신용불량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살처분 보상금인데 이는 수령해 봤자 대부분이 계열사로 돌아간다. 육계와 오리는 대부분 계열화가 이뤄져 있다. 농가가 살처분 보상금을 수령하면 그대로 계열사로 전달하고 계열사에서 그 중 사육비만을 정산해 농가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C씨는 특히 살처분 보상금은 가축의 출하를 가정해 성체 기준으로 지급되지만 계열사에서 농가에 돌려줄 때는 살처분 당시의 일령을 기준으로 지급해 수령금액에 대폭 차이가 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C씨의 경우 수당 8,000원대의 살처분 보상금을 받아 봤자 계열사에서 이것저것 공제하고 나면 단돈 몇 백원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

C씨는 지극히 간단하고도 당연한 바람을 전한다. “살처분도, 보상도 다 전시행정이다. 나랏돈으로 보상 잘해준다고 방송에선 요란하지만 농가의 피부에 와 닿는건 하나도 없다. 보여주기 급급한 대응이 아니라 농가의 현실을 고려한 대응이 이뤄졌으면 한다.”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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