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누가 이렇게 개떡같이 하는거야

  • 입력 2014.02.09 22:47
  • 기자명 서정욱 안성의료생협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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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의 아이디어는 상당부분 책 〈소프트웨어, 누가 이렇게 개떡같이 만든거야 (인사이트)〉에서 따 왔습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간다. 여기까지는 배가 고파 식당에 가거나, 옷 사러 가는 일과 아무런 차이 없이 진행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접수를 하고 기다린다. 대부분의 병원은 환자에 맞춰 진료가 진행되기 보다는 의사에게 맞춰 진행된다. 의사가 나를 봐 줄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린다. 오늘은 운이 좋아 많이 기다리지 않고 내 순서가 되었다. 이제 나의 증상을 설명해야 할 시간이다. 의사가 과로에 찌들어 있지는 않은지, 이전 환자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는 아닌지를 잘 살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의사가 알아 들을 수 있게 조리있게 잘 이야기해야 하는 거는 전적으로 환자의 의무이며 의사는 모니터에 고개를 쳐박고 독수리 타법으로 더듬더듬 키보드를 치면서 가끔씩 고개를 갸웃하거나, “그래서요?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증상은 절반도 이야기 못했는데, 의사는 자기가 듣고 싶은 대답만 듣길 원한다. 도대체 의사가 뭘 알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빠른 속도로 진료는 끝나고 집에 돌아와 정신을 차리면 한가득 의문만 남는다. 왜 의사들은 지저분하고 무뚝뚝하며 항상 짜증을 내고 있을까?

우리는 의사들이 ‘모범생’ 출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모범생은 인류 공통의 관심사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나만의 장기와 관심분야에 집중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좋은 성적으로 인하여 다른 대부분의 잡다한 일상사로부터 면죄부를 받고 성장해 왔으면서도 항상 칭찬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타인과 일상에 대한 무관심은 오히려 ‘집중력’ 높은 장점으로 인식되며 학업을 위한 한길로 매진해 온 결과로 임상의사가 될 수 있었다. 오히려 많은 개원의들은 경영이나 직원, 환자관리 능력의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료에만 전념 할 수 있는 환경이 많은 의사가 꿈꾸는 천국이며 ‘교과서적인 진료’가 최상의 가치있는 진료다. ‘공부가 제일 쉬웠던’ 이들에게 감정노동이야말로 한번도 요구받고 훈련받아 보지 못했던 ‘중노동’이다.

많은 의사들이 ‘남자’라는 이유도 한편으론 장애로 작용한다. 익숙한 것 보다는 새로운 것, 결과보다는 더 높은 기술 수준, 복잡한 기계 자체에 관심을 보이는 남성 호르몬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 새로운 검사법을 시도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의사에 대한 편견 중 많은 부분은 그들의 높은 수입과 사회적 지위에 원인이 있다. 사실 높은 숙련도와 기술적인 완성을 요구하는 직업군들은 대부분 무뚝뚝하고, 자기 기술에 대한 높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어서 사회성이 부족해 보인다.

윤오영님의 수필에 등장하는 ‘방망이 깍던 노인’만 생각해도 얼마나 불친절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가? 하지만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완성된 결과물 하나에 열중하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장인정신’이야말로 높은 기술 수준의 표상이다. 하찮게 보이는 방망이 깍던 노인은 오히려 주위의 핀잔의 대상이 되었었지만, 우월한 지위의 의사들로 인해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의술과 다른 기술의 차별점 중 중요한 하나는 사람과 관련된 일이라는 점이다. 대상에 대한 탁월한 집중과 열정으로 완성되는 기술에서 대상이 감정과 의사소통 가능한, 같은 사람이라는 점은 큰 변수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지나친 감정이입이 오진과 실수를 가져온 수많은 사례들이 발생되고 ‘V.I.P. 증후군’ 이라는 용어까지 생겨 났다. 친지나 유명인사를 진료 할 경우 오히려 더 많은 부작용이나 치료 실패를 낳는 경우가 있다. 항상 냉정함을 잃지 않고 환자와의 감정교류를 차단하고 엄밀한 진단과 치료를 선택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는 사실을 환자는 알고 있을까?

요즘에는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가창력과 감정전달 능력, 한마디로 ‘노래실력’만으로는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외모라거나 성장 환경 등 인기요소들이 많이 개입된다.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결과물인 진단과 치료술만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외모와 화술, 심지어는 병원 인테리어나 광고가 주된 평가가 된다면 눈이 즐거운 노래는 많아지더라도 귀가 즐거운 노래, 가슴을 울리는 노래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의사들은 자신의 치료결과에 대해서 기술자의 열정으로 책임을 진다. 하지만 그 결과는 바로 나의 건강과 생명이다. “당신의 의사를 알라, 의사는 당신이 아닐지니.” 그들은 공부밖에 모르고, 새로운 호기심으로 가득하고, 오히려 당신과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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