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포도휴게소에는 송산포도가 없다?

  • 입력 2014.02.09 22:43
  • 기자명 허남혁 전 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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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혁 전 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대구대 강사
이번 겨울에 이탈리아와 일본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지역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길 원하고, 그 중 많은 부분은 그 지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을 가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지역에서만 나는 특산물을 선물로 사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탈리아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휴게소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와 나가는 출구가 하나씩 밖에 없어서 엄격하게 출입이 관리되고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건물 내부를 거쳐서 출구까지 나가는 통로 역시 하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건물 내부의 여러 상점과 코너들을 반드시 한번은 지나가야 한다.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상술이 아니겠냐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 통로의 중앙부 쯤에는 반드시 그 지역(주 차원)에서 대표적으로 자랑하는 와인, 치즈, 올리브유, 햄 등의 특산물들이 전시되는 코너가 있었다. 그 코너를 반드시 통과해야 하고, 물건들을 보면 하나라도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사실상 로컬푸드 직판장이다. 우선 지역의 식품업체들이 만드는 다양한 가공품과 지역특산물들이 반드시 있고, 자신의 현(광역지자체)을 중심으로 하되 그 고속도로가 지나는 인근 몇 개 현의 물건까지 코너를 구분하여 판매한다. 많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인근 농민들이 휴게소 앞 공터에 천막을 치고 매일 농민장터를 연다. 또 지역산 식재료를 사용한 다양한 즉석식품들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은 1991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국도변 휴게소 시스템을 새로 만들었다. 길의 역이라고 해석되는 미치노에키가 지금 일본 전국에 1천개소이다. 지역마다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들로 운영되지만, 핵심 컨셉은 그 길을 지나는 여행자들에게 지역을 알리기 위해 농산물 직판장과 지역특산물 판매장에 지역식재료를 사용하는 식당과 여행정보센터를 겸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에키밴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의 철도도시락은 역마다 다양한 지역식재료로 지역음식을 담아낸다. 지역적, 전국적으로 매년 경진대회가 열린다. 여행자들은 호기심에라도 사먹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기차역 역시 지역특산물 판매장이자 지역음식 식당이고 또 여행정보센터이다. 큐슈 후쿠오카시의 중심인 하카타역 9층과 10층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46개의 식당이 입점해 있는데, 철마다 인근 지역의 제철식재료를 컨셉으로 공동이벤트를 한다. 46개 식당의 대부분이 그 식재료로 각각의 특선요리를 만들어 팔고, 또 대상 지역의 미치노에키와 함께 특산물 판매도 한다.

엊그제 화성 송산포도휴게소에 들렀다. 송산포도를 컨셉으로 최근에 개소한 고속도로 휴게소라, 요즘 만들어진 곳은 좀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포도와 관련있는 상품은 포도호두과자 단 하나이고, 나머지는 모두 서울에서 내려온 프랜차이즈 외식업체와 편의점뿐이었다. 그나마 포도호두과자에 들어있는 포도가루는 미국산이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지역농특산물 판매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판매하는 농특산물도 일부 지역물건을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거의 대동소이하다. 단일한 전국유통업자가 공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휴게소와 기차역은 그 지역의 관문이자 지역을 소개하는 공공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휴게소와 역들은 언제쯤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그 지역과 그 지역의 농민들과 상생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긴 하다. 몇몇 기차역에 지자체 농특산물 매장이 입점하고 있고, 대전역 성심당처럼 지역의 유명한 빵집이 입점하기도 한다. 안성 휴게소에서는 안성 로컬푸드 판매장을 만들었고, 육십령 휴게소에서는 장수 지역의 식재료를 사용한 장수돈까스를 판매한다. 이제는 정부와 농식품부, 지자체 차원에서 좀 더 종합적인 지원책을 강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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