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의 문제는 정치의 핵이다

  • 입력 2014.02.09 22:38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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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토지제도가 문란해져 고려정권이 신뢰를 잃어가자 정도전 등 신흥세력이 등장한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의 성공에는 정도전 등의 정전법이라고 하는 새로운 토지법을 바탕으로 한다. 보다 공평한 토지제도는 민중들의 지지를 받고 그들은 민중들의 지지속에 권력을 장악해 냈다.

그리고 500년이 지난 다음 또 다시 문란해진 농지제도는 새로운 요구에 이르렀다. 갑오농민전쟁의 근본 원인은 농지수탈에 있다. 농사를 지어 남는 것이 없는 상황이 오래가진 못하는 것이다. 민중들의 요구가 외세에 의해 무참히 유린당하고 나라는 식민지라는 신세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35년간의 굴종을 지나고 갑오농민전쟁 후 50여년이 지나 북은 개인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토지정책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했다. 반면 남은 끓어오르는 민중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다가 조봉암 등의 노력으로 유상몰수 유상분배라는 절름발이 토지개혁안이 통과됐다. 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지금 이 땅의 농지 문제는 왜곡정도가 너무 심화되었다. 이 문제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이 땅의 농업이 종언을 고해야 하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고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진보적이라 평가 받는다. 그러나 하위법들은 종종 헌법을 위배하거나 무시하면서 존재해 왔다. 헌법 제 121조1항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강조하고 소작농은 금지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땅에는 농사짓지 않는 사람들의 농지소유가 만연돼 있다. 이봉화의 직불금 수령사건이 아니더라도 이미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한지 오래 되었다. 한 공직자의 부당한 행태가 고발 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뿐이다. 그나마 그런 행태의 권력자들이 셀 수도 없음으로 이 사회는 감추고 덮어버리기에 급급했다.

더 나아가 그들의 농지 소유가 합법화 되도록 교묘한 농지법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농지임대차를 허용하는 법이고 또 하나가 일정규모 이하인 농지는 누구라도 소유 할 수 있다는 법이다. 눈 가리고 아웅한 것이다. 결국 권력자들의 요구대로 됐고 지금 농민들은 누구도 제 땅에서 농사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돼 버렸다. 게다가 농민들이 수고한 만큼의 보상이 되지 못하고 일제 강점기보다 더한 소작료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원인은 정부의 정책이 초래했다. 전업화, 규모화 이론이다. 전업농들에게 대형농기계와 시설을 지원했다. 그들은 경영합리화가 필요했고 가능하면 경작지를 늘려갔다. 그것은 농지확보의 경쟁을 촉발했고 소작료는 상승하는 구조로 된 것이다.

갑오농민전쟁 때 농민들이 주장한 소작료가 3·7제였다. 그런데 21세기 대명천지에 5·5제이거나 그보다 높고 게다가 직불금 까지 요구하는 지주도 만만찮다고 한다. 실제로 한 필지 여섯 마지기에 쌀 25가마를 생산하고 10가마는 생산비로 12가마가 임차료로 지불되니 남는 것이 3가마뿐이라고 한탄하는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녘에 가득하다. 지금의 상태로는 농업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없다. 정부는 농업정책과 토지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농업구조를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중국의 농업경제학자 웬테쥔(溫鐵軍)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의 농업자본의 성공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는 서구의 농업자본이 성장하는데 기본이 됐던 광대한 토지와 풍부한 노예농업이 동아시아에서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우리정부가 주장하는 이른바 전업화, 규모화라고 하는 것이 한정된 농지하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서구자본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농지의 소유가 생산활동의 기반으로 작용하지 않는 상태는 생산단가를 높여 농업활동을 위축 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농지문제를 풀지 않으면 농업의 활로를 말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네팔의 식량보장헌법이나 인도의 식량보장법 등이 농지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제기하고 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뜻있는 언론들이 나서 농지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다룰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요즘 TV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절정이라고 한다. 이는 지속 가능한 사회에 대한 민중들의 요구라 해석할 수 있다. 그만큼 답답한 사회구조에 암묵적 이익을 위해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들이 폭발하기 전에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중 첫 번째가 지속가능한 농업은 농지라는 생산기반에서 근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탈적 농지 투기로 인해 생산기반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을 혁명적 사고로 바꿔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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