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연근전 부쳐 봄맞이 하자꾸나

  • 입력 2014.02.09 22:36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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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았는데 오늘이 벌써 입춘(立春)이다. 입춘 이후에는 겨울동안 활동을 줄이고 에너지 소모를 줄이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잦은 기지개를 켜며 일으키게 된다. 인체가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는 것은 체내의 신진대사가 왕성하게 되고 있다는 의미와도 같으며 이때부터는 오장육부 중에 간이 하는 역할이 늘어나게 된다.

오장육부의 임금은 심장이지만 봄철엔 간이 임금노릇을 하게 된다. 인체에서 간이 하는 역할은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나뭇잎들을 흔들어 나무에 봄기운을 전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에 봄기운을 불어넣으며 인체 곳곳에서 기운을 잘 통하게 하는 것이다. 꽁꽁 얼어붙었던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올라가면서 양기를 퍼뜨리고 인체도 덩달아 양기를 북돋우게 된다.

긴 겨울동안 쌓인 몸 안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도 봄에 간이 하는 역할이다. 간의 그런 역할을 한의학에서는 소설작용이라 하는데 이 소설작용을 돕는 것이 매운맛이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는 절기인 입춘에는 매운맛을 가진 나물 다섯 가지를 골라 먹어온 풍습이 전해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따뜻하고 매운맛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오히려 몸에 화를 조장하여 건강을 해치게 되므로 이때는 간의 열을 내려주는 쓴맛이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의 봄나물이 맵고 쓴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으므로 봄나물들을 챙겨 먹음으로 해서 자칫 나른해지기 쉬운 봄을 건강하게 날 수 있을 것이다.

궁중에서도 입춘에는 입춘절식이라 하여 오신채(五辛菜)를 수라상에 얹고, 민가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었다.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경기도 산골지방(畿峽)에서는 총아(움파)·산개(山芥, 멧갓)·신감채(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내어 임금께 진상하였다고 하니 궁중에서는 이것으로 오신반(五辛飯, 다섯 가지의 매운 맛을 가진 자극성이 있는 나물로 만든 음식)을 장만하여 수라상에 올렸다는 기록이다. 오신반(五辛飯)은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生菜)요리로 엄동(嚴冬)을 지내는 동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게 한 것이다. 또 이것을 본떠 민간에서는 입춘날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 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겨났으며, 춘일 춘반(春盤)의 세생채(細生菜)라 하여 파·겨자·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는 풍속도 있었다고 한다.

산골에 살다보니 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으면 마땅히 시장을 볼만한 곳이 없어 불편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닷새에 한 번씩 서는 장이 있어 선물 같은 식재료를 만나기도 한다. 운도 좋게 오늘은 장에서 미나리랑 달래, 당귀새싹을 한 바구니씩 놓고 앉아 계신 할머니를 만났다. 며칠 전 관곡지 인근에 자리한 시흥농업기술센터 수업을 갔다가 만난 연근도 있으니 갑오년 봄맞이용 음식으로 좋은 궁합 하나 떠올라 주방으로 향한다. 오신채의 하나인 미나리와 피를 맑게 하는 연근으로 전을 부치고 매콤하고 향긋한 달래간장 만들어 곁들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대지가 깨어나고 내 몸은 저절로 기지개가 켜진다. 겨울잠에서 몸이 깨어나는 걸 느낀다. 밖이 아무리 추워도 이제 별 수 없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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