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 따로 없는 지주-임차농의 현실
‘갑을’관계 따로 없는 지주-임차농의 현실
  • 안혜연 기자
  • 승인 2014.02.0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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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료 올려도 “땅 확보 못할까봐” 아무 말 못 해
농가 소득 보전 위한 쌀 직불금, 지주 수령 ‘흔한일’

농민들에게 ‘내 땅’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의미를 넘어 고향이자 생명과도 같은 애착이 담긴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온전히 내 땅 위에만 농사를 짓는 농민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대다수의 쌀 재배 농민들은 지주에게 땅을 빌려 농사짓는 임차농이다. 자작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추가적으로 농지를 임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생산비, 하지만 요지부동인 쌀값에 일정 수준 이상의 농가 소득을 위해선 경지 면적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주와의 관계에서 ‘을’에 해당하는 임차농들은 임차료 결정 등 지주와의 계약에서 주도적인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심지어 쌀 재배 농가의 농가소득을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고정직불금은 엉뚱하게 지주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에 한국농정신문은 임차농들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쌀 주산지인 충남 서천, 전북 김제, 전남 해남, 경북 상주, 경남 밀양·합천·고성, 강원 철원, 경기 여주 지역 등에서 총 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임차농지의 면적 및 임차료, 직불금 수령 여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소득의 절반을 지주에게…높은 임차료에 숨 쉴 틈 없는 농민들

임차료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생산량의 절반까지도 지주에게 지불하는 농가가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강원 철원, 전북 김제 지역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김제나 철원 지역이 다른 곳보다 쌀 생산량이 다소 많은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생산량의 절반을 지주에게 떼어주고 생산비까지 제외하면 농민에게 남는 건 정말 쥐꼬리만한 것이다.

응답자 중 전북 김제에 거주하는 박일람(51)씨는 임차농지 2만4,793㎡에 쌀농사를 짓고 있다. 박씨는 임차농지 중 1만6,860㎡(5,100평)에서는 200평당 쌀 2가마, 나머지 7,934㎡(2,400평)에선 200평당 쌀 2가마 이상을 임차료로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박씨의 지난해 쌀 생산량은 200평당 3.5가마 정도. 즉 박씨는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임차료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생산비까지 빼면 박씨가 손에 쥐는 것은 거의 없다.

경남 합천에서 임차농지 3만3,058㎡(1만평)에 쌀농사를 짓는 이영목씨는 “임차료가 다소 비싸다고 느껴지고 부담도 되지만 빚을 내서 농기계들을 다 갖춰놨으니 농지를 임차해서 조금이라도 더 지어야 수익을 더 낼 수 있다”고 한탄했다.

또 임차료는 그 해의 농사의 작황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예기치 못한 자연 재해 등으로 한 해 농사가 흉년이 들어도 농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한 임차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 이 넓은 농지를 모두 자신이 소유하는 농민은 거의 없다. 콤바인으로 수확한 한 해 농사의 결실 절반 가량이 지주에게 넘어간다. <한승호 기자>
농가경제 위축이 임차료 상승 불러일으켜

이렇게 임차료가 비싸도 농민들은 지주에게 임차료를 낮춰달라고 요구하기 힘들다. 땅을 못 빌리면 아쉬운 쪽은 지주보다 농민이기 때문이다.

임차료가 상승한 것은 쌀농사가 기계화되면서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게 되자, 경지 면적이 넓어도 상관없는 환경이 형성되면서 부터다. 기계화는 농민들 사이에서 경작 면적 확보에 대한 경쟁 과열을 불러일으켰고, 그 양상 속에서 임차료는 점차 상승하게 됐다.

농민들도 경쟁 과열이 임차료 상승을 부추긴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임차료 문제를 쉽사리 지적하지 못하기도 한다. “본인 잘못인데 누구를 탓 하겠나”하는 심리가 깔려 있는 탓이다. 이에 지주들은 임대료가 비싸다는 걸 알면서도 농민들의 경쟁을 악용해 비싼 임대료를 받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농민들의 경쟁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농가경제가 얼마나 위축됐는지를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전엔 1,000평 농사지어 올렸을 소득을 지금은 그보다 더 넓은 땅에 농사를 지어야 같은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쌀 목표가격은 애초 농민들이 주장했던 23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으로 확정됐고 해마다 생산비는 늘어나는 판국에 농민들은 생계를 혹은 자식 교육을 위해선 불가피하게 농지를 늘릴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임차료 선·후불 결정도 지주 손아귀에 있어

임차농들은 임차료 지불 시기를 정할 때도 주도적인 위치에 있기 어렵다.

임차료 지불 시기는 연 초에 선불로 지급하는 형태와 수확 후 후불로 지급하는 형태로 나뉜다. 만약 수확기에 쌀값이 상승한다면 농민으로서는 선불이 좋겠지만, 지금처럼 쌀값이 거의 고정되다시피 한 상태에선 유리할 것이 별로 없다. 일단 한 해 농사지을 자금이 필요한 시점에서 선불로 임차료를 지불해 버리면 빚을 져서라도 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론 갚아야 할 이자도 농민 몫이다.

하지만 설문 조사 결과, 전체 설문자 중 3분의1 정도가 임차료를 선불로 지급하고 있었다. 지주와 임차농이 선·후불을 합의하에 결정한다고 하지만, 지주의 편의대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받아야 할 직불금이 지주에게?

2008년 쌀 직불금 문제로 전국이 들썩였던 적이 있었다. 고위 공직자들을 비롯한 4만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쌀 직불금을 부당하게 수령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쌀 직불금은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만 받을 수 있다. 지주가 농지를 소유하고 있어도 실제로 농사를 짓는 것이 땅을 빌린 농민이면, 그 농민이 직불금을 받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애초에 직불금이 도입된 이유도 쌀 생산농가의 소득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쌀 직불금은 2005년 추곡수매제가 폐지되면서 도입됐다. 농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곡수매제가 폐지되면서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리고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에 따라 예상되는 쌀 재배 농가의 소득 감소를 보전한다는 목적으로 쌀 직불금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고정직불금은 ha당 90만원으로 농가 외 소득이 3,700만원 이하인 농민에게만 지급된다.

하지만 여전히 지주에게 직불금이 부당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알게 모르게 횡행하고 있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 직불금을 지주가 수령한다는 응답이 60명 중 10명이나 됐다. 또 어떤 응답자의 경우, 직불금을 자신이 수령한 후 지주에게 주는 경우도 있었으며 지주가 수령 후 50%를 돌려준다는 응답도 있었다. 직불금이 지주에게 돌아가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농민들 사이에서 쉬쉬하는 분위기까지 고려한다면 실제로 이런 경우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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