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지개발·농업규모화 정책으로 농사지을 땅 경쟁

아파트로 바뀐 문전옥답 … 농지 찾아 농촌으로

  • 입력 2014.02.07 13:29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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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수요가 늘면 가격은 오르게 돼 있다. 농지 임차료 상승의 한 원인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서울에서 2시간이 채 안 걸리는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임금님표 이천쌀’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이천쌀 농사를 짓는 농민들 중 벼농사로 “살만하다”고 말하는 농민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1997년 서울 직장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호법면으로 ‘귀농’한 호법면 쌀전업농 회장 염대선 씨 조차 “이대로는 전망이 어둡다”고 말했다.

호법면을 비롯한 경기도 이천지역의 임차료는 1마지기(200평)당 쌀 한 가마 값인 20만원이다. 200평에 평균 3가마 생산된다고 보면 1가마는 임차료, 1가마는 농자재 비용, 결국 1가마가 농민 몫이다. 1만평 벼농사를 짓는다면, 1,000만원이 순 소득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이 지역 특성상 이렇게 대규모 농사를 짓기도 쉽지 않다고.

“충남북이나 전남북 보다 땅값도 비싸고, 외지사람 땅이 많은 특성이 있다. 2~3,000평 정도가 논농사의 대다수라고 보면 된다.”

▲ 택지개발로 농지가 사라지자 농민들이 다른 농촌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현지 농민과의 농지확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그 결과 농지부족, 임차료 인상 등 임차농민의 2, 3차 피해로 이어진다. 〈한승호 기자〉

벼농사가 소득이 시원찮다보니 하우스농사가 많이 늘었다. 염대선 회장은 “귀농 초기(1990년대 후반) 보다 비닐하우스가 어림잡아 두 배는 많아졌다”고 말했다. 땅주인 입장에서도 벼농사로 임대하기보다 비닐하우스 임대료가 3배는 높다. 200평당 60만원 선. 벼농사의 3배다.

이 지역 시설농사가 늘어난 것은 몇 가지 요인이 있다. 벼농사 보다 소득이 높은 작물을 찾은 지역 내 변화와 함께 수도권 개발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농지를 찾아 이천으로 이전을 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하남 보금자리 주택개발로 하남 농민들이 용인이나 이곳 이천으로 왔다. 하남지역은 그린벨트가 80~90%였던 곳 아닌가. 그 때 이 지역 비닐하우스가 한번 확 늘고, 2000년대 중반엔 판교 낙생농협 조합원이었던 농민들이 택지개발로 이전해 왔다. 한마디로 농민들이 개발에 밀려 내려오는 거다.”

▲ 이천시 호법면 쌀전업농 회장 염대선 씨는 "농민들이 택지개발로 밀려 내려오기도 하고, 쌀 소득이 없어 10여년 전보다 하우스가 2배는 늘었다"고 말한다.

하우스가 늘어난다는 말은 임차료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고, 벼농사 지을 땅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호법지역 하우스농지 임차료도 상승세다.

벼농사와 시설하우스 농사를 함께 하는 최진호 씨는 “7년 전만 해도 200평당 40만원이었다. 지금은 평균 60만원”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농민은 “올해 평당 4,000원(200평당 80만원) 소리도 들린다”고 귀뜸했다. 이마저도 수도권이라는 지역 특성상 시설농사 계약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개발’에 대한 희망을 한켠에 품고 있는 땅주인 입장에서 벼농사보다 장기임대를 해야 하는 시설농사가 부담일 수 있다는 것.

“시설농사는 대체로 5년 장기계약을 한다. 벼농사보다 임대료가 비싸다 하더라도 어느날 개발계획이 발표됐는데, 하우스에 묶여 있기라도 하면 보상 문제로 골치 아프지 않겠나.”

어떤 농사든 서울근교의 농지는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최근 지역의 한 농민은 5년 계약을 했는데, 만기까지 6개월 남기고 하우스를 뜯어내야 했다. 물론 미리 낸 임차료도 땅주인한테 돌려받지 못했다. 이 소식을 전하는 농민은 “지주가 대통령보다 끝발이 높다는 말, 허투루 들을 게 아니다”라고 씁쓸해 했다. 또 한편으론 귀농 활성화 정책이 하우스농지 부족을 부추긴다는 볼멘소리도 들렸다. 정부가 농업농촌 활성화 정책으로 귀농을 유도했지만, 그들이 벼농사보다 ‘억대농부’로 언론에 등장하는 하우스농사를 주로 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권 엽채류 시설하우스는 ‘포화상태’다.

강원도 철원 김화읍의 경우 최근 파프리카, 토마토 등 하우스농사가 늘었다. 하지만 하우스농지 ‘품귀’ 현상 또한 두드러져 웃돈을 주고서도 구할 수 없다. 외지인 소유가 많은 땅은 언제라도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있게 관행상 계약서가 없는 벼농사 임대를 선호한다. 하우스농지의 경우 10년 장기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부담과 준비할 서류도 복잡할 뿐 아니라 차후에 자경 근거에 불리한 탓이다.

김화읍에서 시설농사를 하는 이호반 씨도 “벼농사 소득이 낮아 하우스 농사를 더 짓고 싶어도 농민들이 땅을 못 구하는 형편”이라며 “자기 땅이나 친인척 땅이 아니고서는 외지인 땅에 하우스를 짓는 경우는 이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MB정권 ‘농업선진화’의 폐해

MB정권의 ‘농업선진화 정책’ 또한 농지규모화를 급진전 시켰다.

2009년 3월 뉴질랜드를 방문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뉴질랜드는 농업 자유화와 규제 완화를 통해 개혁을 이뤘고, 보조금 지급 없이도 경쟁력 있는 농업혁명을 이룩했다”면서 한국 농업의 변화를 주문했다.

이에 3월 23일 업계, 학계, 소비자 대표 등 60여명이 참가한 ‘농어업선진화위원회’가 구성됐으며 본격적인 ‘규모화’ 농업으로 체질을 개선한다는 방향을 설정한다. 농업선진화 방안은 규모화한 농기업에 정책자금을 늘리고 농업회사법인에 대한 비농업인 출자를 100%까지 허용하는 등 기업농 육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에 농식품부는 2012년까지 기업형 주업농 20만호와 법인형 경영체 1만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전 정부에서부터 추진되던 농업 개방화·규모화 정책의 결정판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전농·전여농 등에서는 “우리나라 농가의 80%가 중소농이고, 경작지 평균이 0.8ha(2,400평)인 점을 감안할 때, 대농을 양산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지원이 집중되면 경쟁력이 없는 중소농은 농업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농업규모화 정책은 전방위로 득세하고 있으며, 농촌의 부익부빈익빈 현상도 확대되고 있다. 그 한 켠에 중소농들은 면적을 늘려 소득을 보충하고 있다. 임차료를 조금 더 내더라도 생산량을 늘려 부족한 소득을 메우겠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농사규모가 커지면 직간접 경영비도 증가하기 마련이다. 일 년에 며칠 못 쓰는 콤바인을 구입해 매년 할부금과 수리비로 뭉텅이 돈을 내고, 트랙터를 비롯한 각종 농기계값에 빚더미에 오른다.

강원도 철원에서 벼농사를 짓는 전흥준 씨는 “농사짓는 평수가 늘수록 단위 생산량은 줄어든다. 손이 덜가니 비료·농약도 못 치게 되고, 요즘은 기후변화로 일반적인 생산량도 줄어드는 추세다. 결과적으로 마이너스”라면서도 “작은 논에서 벼농사로 생활을 감당하기 힘든 농민들이 임차료를 더 주고서라도 농삿일을 늘려야만 하는 고충이 있다”고 강조했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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