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즉시 내년 임차료 내고 고정직불금도 지주몫”

[강원 철원]악조건 고루 갖춘 민통선 농사

  • 입력 2014.02.07 13:25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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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 좋은 ‘철원오대쌀‘은 농민 소득과 무관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7,600평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A농민(64)의 상황은 기막히다. A농민이 짓는 벼농사는 총 1만3,000여평. 이 중 7,600평을 4년째 임차해 농사를 짓는데, 5,000평이 민통선 안에 있다. 임차료는 1마지기(200평)당 쌀 한 가마 반 값(철원오대쌀 기준 80kg 20만원)인 30만원을 선입금하는 조건이다. 전방 논과 후방 논 모두 동일하다. 주인이 같기 때문이다.

▲ 강원도 철원에서 농사짓는 A씨가 자신이 경작해온 논을 살펴보며 걷고 있다.

“올해까지 4년째 농사를 짓는데, 도지를 선입금한다. 그렇다고 봄에 농사 시작하면서 주는 게 아니라 올해 추수하면서 내년 거를 바로 받아간다. 흉년인 해에는 헛농사를 짓는 셈이다.”

지난해가 꼭 그랬다. 7,600평 논에서 나온 벼값으로 RPC에서 1,800만원을 받았다. 임차료로 1,140만원 보내고 660만원 남는데 여기서도 비료값, 콤바인 비용 등을 주고 나면, 올해 끝나는 트랙터 할부금 350만원을 겨우 맞출 수 있다. 내 인건비를 기대하기란 어림도 없다.

“후방 논은 그래도 지을 만하다. 전방 논은 주인은 5,000평이라고 하는데, 경지정리가 안된논이라 남들은 모두 실제 경작면적은 훨씬 적을 거라고 한마디씩 한다. 콤바인 작업을 맡겼더니 4,000평 정도 될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민통선을 통과해 마을에서 20여분 걸리는 논은 한눈에 봐도 논둑에 포함되는 평수가 상당했다.

“우린 흉년이라도 이미 지난해 계산이 끝난 거라 흥정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좀 깎아달라고 했더니, 되레 민통선 안 논이 6,000평인데 5,000평 값만 받는 거라고 하는 통에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다.”

고정직불금도 당연히 땅주인 몫이다. 이를 위해 비료 30포대 영수증을 자기네 앞으로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이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농지임대차 계약서 같은 것도 실제 쓰는 경우가 드물다.

이같은 사정을 잘 아는 지인은 “면세유가 있다 해도 기름 값이 하도 비싸다보니 민통선 안의 논 둘러보는 일이 무섭다. 조건이 좋지 않은 논도 손을 쉴 수 없는 농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늘려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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