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농업 직불제 시행 10년, 갈 길 멀다

정부 무관심속에 지주-농민간 직불금 놓고 갈등
편법 막을 근본적 대책 마련돼야

  • 입력 2014.02.07 12:55
  • 기자명 김명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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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쌀 수매제도가 폐지되고 정부는 쌀 농가들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률에는 농작물의 생산량 및 가격의 변동과 상관없이 논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등에게 ‘고정직불금’을 지급하고 농지에서 쌀을 생산하는 농업인 등에게 생산한 쌀의 평균가격이 목표가격에 미달하는 경우 ‘변동직불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농지를 경작하는 농민들이 받아야 할 직불금이 땅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들에게 지급되거나 직불금을 요구했다가 계약이 파기되는 등 직불금을 둘러싼 농민들의 고충이 늘고 있다.

이는 1996년 경작지에 대한 거주지 제한 해제로 외지인들이 농지를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경작의 목적으로 땅을 구입하는 것이 아닌 자본을 앞세운 외지인들의 농지구입은 모순적으로 농민들이 이들에게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짓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충남에서 만난 농민은 “땅만 이곳(농촌)에 있을 뿐 주인들은 대부분 도시에 있는 외지 사람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명래 기자>

▲ 2008년 당시 쌀직불금 부당수령 사실은 농민들의 엄청난 공분을 샀다. 그로부터 6년, 쌀직불금 제도는 지주-농민간 갈등을 발생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구두로 거래되는 임대차 계약 직불금 요구 했다가 “농사 짓지 말라”

충청남도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모씨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직불금을 경작자가 수령하는 경우도 있지만 절반에 가까운 숫자는 여전히 부재지주가 직불금을 수령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농어촌공사에서 임대하는 농지는 농민들이 직불금을 수령하고 있지만, 개인 간 거래에는 거의 지주가 수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것은 우리 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도 농지가 부족하다보니 농민들이 농지를 두고 경쟁하기도 한다. 직불금을 직접 수령하지 못하더라도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농지를 임차할 때 임대료 수준이나 지주의 직불금 수령여부에 대해서도 지주가 일방적으로 정해 농민에게 통보한다”며 “농민들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거절을 못하고 경작하게 된다. 또 문제는 계약서도 없이 구두로 결정해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보통 3년을 기준으로 하고 그 기간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계약서 없이 농지 임차를 하는 것은 전국적으로 빈번한 사례다. 지주가 농지를 임대할 때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농민들은 입을 모은다. 계약서를 작성하면 지주의 비경작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고, 직불금마저 회수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남에서 농사짓는 박모씨는 지주에게 직불금을 요구했다가 경작이 취소되는 일을 겪었다. 경작자가 직불금을 수령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임에도 땅 주인은 박씨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웃마을의 농민과 새로 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임차농민들은 지주의 횡포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박씨는 “법에 나와 있는 대로 시정을 요구했을 뿐인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당하고도 하소연 할 곳이 없어 속상하다. 결국 농민들도 암묵적으로 불법을 묵인하고 있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편법 부추기는 직불금 제도

경기도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이모씨가 경작하는 논은 13만8,842㎡(4만2,000평), 이 중에 이씨가 소유한 논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논은 외지인들(부재지주)의 소유거나 나이가 들어 농사짓기를 포기한 마을 주민의 논을 임차해 농사를 짓고 있다. 비록 임차한 논이지만 상당한 규모의 쌀농사를 짓고 있는 이씨가 받는 직불금은 원래 받아야할 금액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농지의 위치가 산골짜기에 있어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이 없는 논에 대한 직불금은 그가 받고 있지만, 경지정리가 된 논의 직불금은 지주가 가져가고 있다. 쉽게 말해 경지정리가 잘 돼 농사짓기 쉬운 논은 이씨가 아니더라도 임차할 사람은 많다. 때문에 이 씨는 직불금에 대해서 이렇다 할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임대료 정산방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이씨 마을의 임차료 정산은 보통 추수가 끝난 뒤 1마지기(200평) 당 쌀 한가마(80kg)로 계산하고 있다. 이씨의 경우는 경지정리가 된 논 5마지기(1,000평) 당 쌀 5가마로 지불해야 하지만, 정부에서 지급하는 직불금을 지주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임대료를 낮춰 지불하고 있다.

대신 이씨는 직불금을 지주가 받을 수 있도록 논에 사용한 비료, 농약, 농자재 등을 지주의 이름으로 구매하고, 연말에는 지주의 이름이 적힌 구매 영수증을 지주에게 보낸다. 만약에 있을 경작확인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결국 서울에 거주하면서 농사도 짓지 않는 지주가 서류상에는 경작자로 등록되는 것이다.

이는 8년 이상 자경하게 되면 양도소득세가 면제되는 허점을 노려 지주와 농민들이 이같은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현행법에는 농지를 샀다가 되팔았을 경우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를 60%이상 세금으로 징수하고 있지만 지주와 농민들은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이씨는 “농지는 점점 줄어드는데 미리 사놓은 기계값을 갚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불법인줄 알면서도 따르고 있다. 농지를 임대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불리한 계약인 줄 알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직불금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경작면적이 1ha이하이거나 지주의 보유 농지가 1ha에 못미쳐 경작자가 다른 농지와 연계해 신청할 수 있지만 지주의 자경사실을 유지하기 위해 임차인과 지주 모두 직불금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다.

2008년 당시 쌀직불금 부당수령 사실은 농민들의 엄청난 공분을 샀다. 그로부터 6년, 쌀직불금 제도는 지주-농민간 갈등을 발생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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