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떡국으로 만난 사천 굴

  • 입력 2014.01.26 21:17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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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흙속에 있다>는 책을 펴낸 게으른 농부 이영문 선생의 태평농법이 세상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남편을 따라 거창엘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과연 선생의 생각이나 농법이 세상에 얼마나 받아들여질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리고 십 년 쯤 지나 다시 만나기 위해 연락을 해보니 사천의 별학섬에서 지중해성 작물의 국내 토착화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하셔서 그리로 찾아갔었다.

직접 만든 배, 직접 생산해 쓰는 전기 등이 신기했고 우리나라에서 지중해성 작물이 자라고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리고 이영문 선생이 들려준 많은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나에게는 그날 그 바닷가에 널린 굴들과 같이 놀던 기억이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다.

갯가에 흔한 돌멩이 하나를 들어 굴을 내리치면 반으로 갈라지면서 안에 뽀얗고 탄력 있는 속살을 드러냈다. 작지만 탱글탱글한 굴을 입에 넣으면 짭조름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을 채 느끼기도 전에 호로록 목을 타고 넘어갔더랬다.

또 십 년쯤 지난 것 같다. 오늘 나는 다시 사천의 자연산 굴과 만났다. 자잘해서 씻기는 좀 번거롭지만 어찌나 달고 맛난지 씻으면서 자꾸 입으로 가져가게 된다. 너무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혀가 교란된 미각으로 식재료의 제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국물음식을 하더라도 감칠맛을 증폭시킨 국물을 만들어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좀 다르게 떡국을 끓인다. 우선 떡을 찬물에 담가두고 냄비를 준비하여 필요한 만큼의 맹물을 넣고 끓인다. 그 사이 대파를 다듬어 씻어 어슷하게 썰어 놓고 김치도 꺼내 썰어 담는다. 물이 끓으면 찬물에 담가 두었던 떡을 건져 넣고 끓이다가 떡이 떠오르면 건져 놓은 굴을 투하한다. 5분간만 더 끓이고 썰어 놓은 파를 넣는 것으로 굴떡국은 끝이다. 맹물에 굴과 파만으로 시원하고 단 국물의 맛있는 떡국이 완성되었다.

굴은 맛도 맛이지만 체질이 허약한 사람들이 겨울에 굴을 많이 먹으면 기운이 난다고 하니 떡국이 아니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해 먹으면 좋겠다.

서양에서도 굴은 강장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날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 그들도 굴에 부족한 비타민 C를 보충하고 굴의 갯내를 없애기 위해 레몬을 곁들인 생굴을 먹고 있다. 레몬즙과 같이 먹는 굴은 세균 번식이 억제되고 살균효과도 있다.

굴은 한방에서 석화(石花) 또는 모려(牡蠣)라 불리는데 우리 조상들은 음식으로도 먹고 약으로도 두루 먹어왔다. 궁중 어의였던 전순의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식이요법서인 <식료찬요>에서는 신선한 굴을 구워먹으면 피부가 매끄러워지고 안색이 밝아진다고 하였으며, 신선한 굴을 쪄서 먹으면 심신이 허약하여 불안하고 잠을 못 이루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굴의 이런 체내 작용이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하얗다’는 속담을 만들었을 것이다.

겨울을 잘 나야 봄에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겨울을 잘 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굴처럼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올해 설에는 굴떡국도 끓이고 굴전도 부치고 다양한 굴요리를 상에 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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