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국과 종이떡

  • 입력 2014.01.26 21:15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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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농업전망대회가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해마다 열리는 농업전망대회는 관심 있는 농업계인사들로 북적댄다. 그러나 농업전망대회장에 진정으로 흙손흙발을 한 이들은 얼마나 될지 모른다. 농업관료와 학자들 농업단체 인사들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기자들이 자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향해 발표되는 농업전망이 아니라 연구자들 간의 말잔치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일찍이 한국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임원경제지를 집필한 서유구(1764~1845)는 농학서인 행포지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세상을 경영하겠다고 부지런을 떨어보았자 기껏 흙국(土羹)을 끓이거나 종이떡(紙餠)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즉 아무리 이론을 들이대고 설파해도 결국은 먹지 못할 흙으로 만든 국일 뿐이고 종이로 만든 떡처럼 쓸모없는 짓이란 것이다. 아무래도 후대의 농업전망대회라는 것을 미리알고 쓴소리를 한 것 같다.

몇 번 농업전망대회에 참가해 봤다. 그러나 대회를 성대하게 치를수록 종이떡들은 쌓여가지만 농민들이 먹을 수 있는 떡은 어디에도 없음을 본다.

특히 올해 대회를 두고 벌써부터 말이 많다. 주제가 제대로 잡히지도 않고 장관의 농업개발 5개년계획이라는 것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저 개발시대의 5개년계획을 다시 꺼내 드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단순히 청와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면 치졸한 짓이다.

어려워져가는 농업환경을 지켜가는 일은 이제 관주도의 그것도 60~70년대 개발주의 방식으로 만들어가기는 어려운 일이다. 세상이 변화한 만큼 농민들도 변했다.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면 골탕먹는다는 우스개가 농촌을 지배한지도 오래 됐다.

농민의 정부불신은 농업의 축소정책을 일곱빛깔 무지개로 포장해 발표하는 데서 시작한다. 미래산업이니 생명산업이니 하면서 자본에 의한 강제적 구조조정으로 농업농민을 구렁텅이로 몰아 넣고 있음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농업전망대회는 토갱이나 지병을 만드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 우리농업의 현주소를 제대로 지적해야한다. 자국의 식량자급률이 통틀어 23%밖에 안 되는 이유를 까발려야 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길을 잡아주어야 한다.

우리농업의 미래는 이제 관료에게 있는 것도 농업학자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민의를 모아야 한다. 기초교육에서 농업의 중요성을 말해야 한다. 서유구가 임원경제지를 펴낸 이유이기도 하다. 더 나가면 국민들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이해시켜야 한다. 특히 자유주의 경제론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농업보호와 개발을 국가의 미래전략으로 수립해야 한다.

더더군다나 농민들은 이제 지칠대로 지쳐 농업에 대한 희망을 잃고 말았다. 국민들이 나서야만 농업의 활로를 보장받든 아니면 농업을 포기하든 할 것이다. 우리에게 닥쳐온 어려운 사실들을 국민들과 함께 의논하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농업전망대회는 토갱이요, 지병을 만드는 것에 불과한 것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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