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같이 먹는 게 가장 재미 져.”

사진이야기 農․寫 고령화된 농촌서 홀로 된 노인들의 공동생활 ‘그룹-홈’

  • 입력 2014.01.10 15:11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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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부대끼며 잠을 청하는 할머니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TV를 시청하고 있다.

 

▲ 공동생활의 재미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귤을 까먹다 함박웃음이 터진 할머니들.

 

▲ 할머니들은 원만한 공동생활을 위해 청소, 식사, 목욕 당번을 꼬박꼬박 지킨다.

 

▲ 그룹-홈의 최고령인 김이만 할머니를 유말례(왼쪽) 회장과 박양춘(오른쪽) 총무가 부축해 걷고 있다.

“옳거니 잘한다.”, “저런, 이를 어째.”, “천벌을 받아야해.” 드라마 삼매경에 푹 빠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극중 상황에 박장대소가 터지는 듯싶더니 이내 탄식이 흐른다. 삼삼오오 모여 페트병을 베개 삼아 눕기도 하고 꽃무늬 벽에 등을 기댄 채 두 다리 쭉 편 할머니들의 시청소감에 경로당이 시끌벅적하다.

전북 김제시 월성동 월성여성경로당. 여느 경로당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지만 이곳은 꽤 특별하다. 날로 고령화 되어가는 농촌에서 홀로 남은 노인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존 경로당을 개보수한 ‘한울타리 행복의 집’, 즉 ‘그룹-홈’이다.

경로당이 지난 2009년 6월 그룹-홈으로 지정된 이래 16명의 노인들이 같이 밥 먹고 같이 웃고 같이 자는 등 ‘같이의 가치’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최고령 아흔세 살의 김이만 할머니부터 막내(?)이자 그룹-홈의 총무를 맡고 있는 예순다섯의 박양춘 씨까지 ‘그녀들만의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공동생활이다 보니 규율(?)도 엄격하다. 식사․청소 당번은 기본이고 목욕 당번까지 정해져 있다. 경로당 벽에 걸린 메모판엔 각 요일별 당번 이름과 그날 점심 메뉴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유말례, 소수영, 이기임, 이순애, 박정자, 전순자, 선봉례, 황광자, 이영자, 표현식, 김광임, 김양순 할머니 등 7~80대가 주축으로 예외는 구순을 넘긴 김이만, 김영순 할머니와 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인 할머니들뿐이다.

그룹-홈의 회장을 맡고 있는 유말례(83) 할머니는 “집에 혼자 있으면 끼니도 대충 때우기 마련인데 이곳에선 밥뿐만 아니라 귤, 빵 등 간식까지 챙겨먹게 된다”며 “(사람들로) 북적북적되니 입맛까지 좋아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선봉례(80) 할머니는 “살던 집은 ‘이상없나’ 하고 아침저녁으로 들르기만 하는 거여. 같이 있으니까 재미지지. 조금 불편한 건 암시랑토 안 혀. 암.”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할머니들의 보건소 검진이나 요가 프로그램 등 그룹-홈 운영 전반을 관리하고 있는 박양춘 총무도 “힘든 세월을 감당하느라 절약이 몸에 밴 할머니들은 무엇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다”며 “무언가가 부족해도 그저 좋다고 하시면서 잘 따라와 주시니 늘 감사하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개선사항도 적지 않다. 기존 경로당을 개보수한 시설의 경우, 공간이 협소하다. 지난 7일 밤 그룹-홈에서 잠을 청한 할머니들은 몸을 뒤척거릴 정도의 여유도 없이 서로 부대끼며 자야 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낮은 문턱 또한 큰 걸림돌이다. 할머니들이 이용할 운동시설 또한 전무하다.

박 총무는 “공동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룹-홈이 고령화된 농촌의 삶의 질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라면 지자체 보다 정부가 먼저 나서서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지원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함께 살아 좋은 한울타리 행복의 집, ‘그룹-홈’. 지난 8일 아침 월성여성경로당의 맏언니 김이만 할머니는 몇 걸음 걷고 쉬고 하기를 반복하며 집에서 나와 또 하나의 집으로 향했다. “밥 같이 먹는 게 가장 재미 져”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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