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는 계속되어야 한다

  • 입력 2013.12.29 21:11
  • 기자명 오미란 광주여성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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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미란 광주여성재단 사무총장
고려대에서 한 대학생에 의해 시작된 대자보 제목 ‘안녕들 하십니까?’가 우리 사회에 몰고온 파장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22일 대규모 경찰병력을 동원한 역사상 초유의 민주노총 사무실 강제진압이 이루어졌다. 마치 유신의 망령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농민들은 안녕들 하십니까를 묻지 않는다.

20년 전 우루과이농산물 수입개방 투쟁이 한창일 때가 생각난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쌀개방과 우루과이에 대해 대자보를 붙이고 전지에 궤도를 만들어 그림으로 마을강의를 하러 다녔다. 우리가 결코 안녕하지 않다고 열심히 농민들에게 호소하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열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 우리는 농민들을 향해 안녕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시민 학생들도 우리들의 안녕에 대해 관심이 약해지고 있다. 눈보라 속에서 서울 상경투쟁을 하러가다가 고속도로에서 차단당한 각 지역 농민들의 쌀은 지자체 앞마당에서 추운잠을 자고 있다.

농민은 커녕 농민이 만든 나락 가마니조차도 안녕하지 못한 현실이다. 우리농민들은 마을마다 확성기를 틀고 ‘농민들이 안녕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도시의 학생들도 겨울농활을 도심길거리에서 농민들이 안녕하지 못하노라고 외치는 것으로 실시해야 한다.

FTA(자유무역협정)라는 말이 누구나 아는 대명사가 되어버린 요즘 또다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라는 이상한 단어가 튀어나온다. 어쨌거나 두 괴상한 외래어가 뜻도 잘 모르는 저것들이 우리 농민들 목숨줄을 쥐고 쥐락펴락 하니 농민들은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해외까지 나가 영어도 모르는데 상여를 메고 삼보일배를 하고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농민들은 정말로 정말로 안녕하지 못하다.

KTX 투쟁이라는 초유의 투쟁전선에서 이 중요한 시기에 농민들의 쌀투쟁이 묻히고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투쟁도 묻혀버렸다. 그래도 농민들은 안녕하지 못하기에 오늘도 투쟁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한가지를 제안한다. 전국의 모든 마을에 ‘농민들은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답글 대자보를 개시하자. 동네 마을회관에 함께 모여있는 어르신들과 함께 안녕들 하십니까에 대한 답글을 보내주자. 학생들은 도심 곳곳에 농민들도 농민들이 지은 나락 농사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자. 농민들이 안녕하지 못해서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도 안녕하지 못하고 그래서 국민들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공감해야 한다.

2013년 농업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농정과제 우선순위로 농민들은 소득안정을 도시민들은 안전식품을 들고 있다. 단어로만 보면 서로 다른 정책욕구를 갖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둘은 샴쌍둥이 같은 한 몸이다.

소득이 안정돼야 안전한 먹거리 생산을 위한 생산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친환경농업으로의 전환은 소득의 보장없이 불가능하다. 친환경 농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전한 먹거리는 보장될 수 없다. 또한 안전한 먹거리 생산을 위한 식량자급률 향상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결국 ‘소득안정=안전식품’의 등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면을 통해 도시민에게 묻고 싶다. ‘안전식품을 생산하는 농민들, 안녕하실까요?’ ‘지금 여러분의 밥상,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농민들에게도 묻고 싶다. ‘응답하라. 2014. 농민들 안녕들하신지’ ‘나락도 안녕하신지’…

2014년은 갑오년 청말띠라고 한다. 청말은 유니콘처럼 희망이 새겨져 있는 해이다. 우리 농민들도 2014년 ‘안녕하세요’라고 희망을 새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마을마다 ‘농민들, 안녕하지 못하다’는 대자보를 붙이자. 전국에 일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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