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가난한 농민들에게 농산물 비싸게 구입해
가난한 국민들에게 싸게 팔 수 있게 됐다”

제9차 WTO 각료회의 타결…‘발리패키지’ 어떤 의미 있나

  • 입력 2013.12.15 21:39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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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상태였던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가 제9차 발리 각료회의, 일명 발리패키지에 합의하면서 긴 잠에서 깨어났다. 모든 회원국들간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합의로 이끌어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양자간(FTA) 혹은 다자간(TPP 등) 자유무역협정이 득세하고 있던 세계무역체계가 이번 발리패키지 타결로 변화가 생긴 셈이다. 국내 언론들도 “1995년 WTO 출범 이후 159개 회원국이 사상 처음 협정을 타결했다”며 앞다퉈 보도했다. 이번 각료회의 타결은 ‘인도의 승리’라는 평가다. 어떤 의미인지, 또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김경미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통상과 과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농경연을 비롯한 연구기관에서는 이번 ‘발리패키지’ 타결이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안심해도 되는 것인가?

- 발리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에 참석했었다. 3일~6일까지 3박4일 일정이었는데, 마지막날까지 발리패키지 타결 전망은 어두웠다. 힘들다는 분위기가 대세였는데, “이러다 WTO가 죽는거냐” “WTO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반론들이 거세지면서 WTO가 일부 이슈에 대해 조기 타결을 선택했다. ‘의제의 합의’ 보다는 ‘WTO 부활’에 의미를 두었다고 보는 게 더 적합하다. 이번 발리패키지의 농업의제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인도를 제외한 개도국에 큰 힘을 끼치는 사항이 없다. G33(개도국그룹)과 G10(수입국 그룹)에 참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 제9차 WTO 각료회의 기간내내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한국농민투쟁단과 전세계 농민단체가 발리에 집결해 “각료회의 중단’을 촉구하는 다양한 WTO 반대 활동을 벌였다. <홍기원 기자>

▶ 발리패키지 농업의제 중 TRQ(저율할당관세) 관리 개선 문제는 어떤가.

- TRQ 관리 개선 문제는 한마디로 TRQ 이행률을 높이라는 의미다. 이는 수출국들의 요구인데, 수입국별로 TRQ 물량만 정하고 이행은 수입국 재량에 맡겨진 결과 나라마다 TRQ 이행률에 큰 차이가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제안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번 합의에 따라 TRQ 관리감독이 강화되고, 불필요한 지연이 금지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축산물 수입허가 관련 고시의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3년 연속 TRQ 소진률이 65% 미만일 경우 관리방식을 변경하는 등의 제재는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이기 때문에 의무사항이 아니다.

▶개도국이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시 보조한도를 초과할 때 분쟁을 피할 수 있다는 협정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 적용 여부는?

- 인도가 제기한 의제다. 이번 발리패키지는 사실상 인도의 승리라고 회자된다. 인도는 지난 8월 말 ‘국가식량안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의 골자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농산물을 비싸게 구입해 가난한 국민들에게 싸게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WTO가 금지 하는 첫번째가 국가정책이 ‘가격’에 개입하는 문제다. WTO 협정에 위배될 입장에 놓여 있는 인도가, WTO 농업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고,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들은 ‘원칙을 건드리는 것’이라는 입장으로 반대해 왔었다. 하지만 인도의 주장은 AMS(감축대상보조), De-minimis(최소허용보조) 등의 한도금액이 개도국이 더 많아야 하는데 선진국이 더 많은 현실은 불합리 하다는 것이다. 실제 AMS 한도 등을 결정하는 기준은 1995년 당시 농민보조로 소요되는 정부의 재정규모였다. 당연히 부유한 선진국이 재정소요가 많았을 테고 상대적으로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은 적었다. 집요한 인도와 미국은 막판까지 극비 협상을 벌인 결과, 공공비축 보조한도를 임시 허용하되 ‘2013년 12월 6일 현존하는 정책을 대상으로 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이 외에도 세밀한 내용들이 있지만 굉장히 까다로워서, 사실상 인도에만 해당되는 협정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공공비축은 시장가 매입이 원칙이기 때문에, WTO 허용보조에 해당한다.

▶수출경쟁 관련 보조금 감축 문제도 있는데, 국내 농식품 수출에 걸림돌은 없나?

- 개도국의 물류비용은 WTO 인정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의제는 법적 구속력 없는 선언적 의미다. 하지만 수출보조 감축은 모든 WTO 회원국이 동의하는 이슈로, 향후 최우선 과제가 될 것으로 본다. 이밖에 일반서비스분야 허용보조에 홍수통제 및 가뭄관리, 농지개량 등이 추가됐는데, 이미 우리나라는 시행중인 사항이라 특이점은 없다.

▶미국을 상대로 자국의 농업 보호에 사활을 건 인도의 이번 활약은 국내 농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다.

- 우리 농민들도 어려움이 있지만, 인도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로 WTO에 참여하는 것조차 대부분의 국가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선진국 수준의 대한민국이 농업문제를 국제사회에 요구했다가, 협상은커녕 개도국지위부터 공격받을 처지다. WTO 회의에서 다양한 나라들이 별의별 요구를 하는데, 인도처럼 막판에 몰리지 않고서야 들어주지도 않는다. 인도의 처지는 그만큼 어렵고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말이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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