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의 시대

  • 입력 2013.12.15 21:36
  • 기자명 한도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항상 삶이 어려워진 곳에 반드시 민란이 일어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민란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찬찬히 살펴보면 모두가 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대부분 주모자가 잡혀 처형당하고 무리는 흩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후 사회는 드러난 폐단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

보통 역사에서 민란의 시대라 하면 조선 후기를 일컫는다. 명종시대부터 자연재해로 흉년이 겹치고 양반관료의 수탈이 심화되자 임꺽정이나 장길산 같은 도둑의 무리가 나타났다. 이후 관료의 탐학, 수탈, 부정부패에 외세와의 갈등까지 겹친 조선 말기는 민란이 싹트기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홍경래의 난(1811)은 최대의 민란이었다. 목적은 봉건제도 혁파에 있지만 발생원인은 양반관료들의 수탈에 있다. 조일전쟁 후 이앙법 등이 발전하며 생산이 늘어났지만 농민들은 가혹한 소작료로 죽을 지경이었다. 농민들의 고조된 불만이 민란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862년(철종 13) 전국적으로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역사는 이를 일러 ‘임술민란’이라고 한다. 그해 2월 4일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에서 시작된 농민봉기는 진주를 비롯 그해 말까지 경상도·충청도·전라도·황해도·함경도와 경기도 광주로 번지면서 전후 37차에 걸쳐 일어났다.

이후 다시 25년 만에 갑오농민전쟁이 발생했다. 약 100년간의 민란의 시대는 갑오농민전쟁의 패배로 막을 내리지만 조선이라는 봉건국가도 막을 내리게 된다. 이렇듯 민란은 그 성패여부와 관계없이 그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변혁을 향해 앞으로 밀고 가는 힘이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현시대가 100년 전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는 의견들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민란의 시대 경제적 수탈과 외세의 침탈에서 비롯됐다. 지금 신자유주의는 악마적 이윤을 위해 이빨을 드러내고 노동자 농민들의 피를 빨고 있다. 외세는 그 이윤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글로벌로 돌아치고 있다. WTO, DDA, FTA, 그리고 TPP 까지 세계를 휩쓸며 인간보다는 이윤을 외치고 있다.

농민들의 개방반대 투쟁은 벌써 오래전에 시작 되었고 여기저기서 수탈을 향한 거부의 몸짓들이 어지럽다. 쌍용차 노동자 해고로 시작된 쌍용차 투쟁이 5년째 이어지고 밀양의 송전탑반대투쟁도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과격한 이윤창출로 수탈당한 민중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결국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신자유주의 글로벌과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민란의 시대를 맞이한 것인가?

19세기 ‘민란의 시대’에 조선 8도를 흔든 민중들의 처절한 투쟁은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것이었다. 체제와 권력에 맞서 일어선 민중들의 피맺힌 저항은 새로운 시대를 향해 거칠게 내뿜는 숨소리였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