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권리 침해하는 밀양, 그리고 WTO와 TPP

  • 입력 2013.12.13 10:12
  • 기자명 한경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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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례 전여농 정책부회장
“농민은 자신의 땅과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프로젝트, 프로그램 및 정책에 대해서 정책구상, 의사결정, 이행 및 모니터링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이것은 2012년 2월, UN 인권이사회를 통과한 ‘농민과 농촌지역에서 일하는 여타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s of peasants and other people working in rural areas, 이하 농민인권선언)의 2조 4항이다.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골프장과 최근 밀양의 원자력발전소 송전탑 건설로 인해 싸우고 있는 농민들은 이러한 권리에서 철저하게 배제당하고 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9차 WTO 각료회의를 통해 이른바 발리 패키지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2001년 이후 정체되었던 DDA 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지난 달 말 정부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관심 표명을 하고 참여할 의도를 밝혔다. 농민인권선언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 세계의 소농들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농민의 권리 침해를 악화시킨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른바 시장개방을 강요하고 국가가 국내의 농업을 지원하고 보호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들이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농민들은 식량주권을 실현하여 농민의 권리가 보장됨은 물론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어 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식량주권 실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식량을 생산하는 자, 생산자인 농민의 권리는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모든 인류의 미래는 농민들이 양질의 삶을 살고 지속가능한 농업이 가능한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담보하는 농민들의 권리는 식량주권에서 중요하다. 농민인권에 대한 논의는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UN 내에 다양한 인권 장치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1979년 농지개혁과 농촌개발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농민헌장’은 국제 자유화 정책으로 농민들을 보호할 수 없었다. 이후 농민인권에 대한 내용의 진척은 2000년 비아 캄페시나가 인도네시아 메단(Medan)에서 개최한 농민권리에 관한 워크숍을 시작으로 본격화된다. 2001년에는 자카르타에서 농업 개혁 회의, 2002년 4월에는 농민권리에 관한 지역 회의를 거쳐 ‘농민권리 헌장’을 공식 선언하고, 2004년에는 전 세계 농민의 권리 침해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어 UN인권이사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2008년 6월에는 <농민들, 여성과 남성, 권리에 관한 선언문>을 통해 농민인권 헌장에 대한 필요성과 조항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3월 서울에서 열린 비아 캄페시나 국제조정회의에서 <여성과 남성, 농민인권 선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농민인권의 필요는 고도로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농민들이 생산한 식량을 먹지만 농민의 권리가 지속적으로 침해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식량위기 등의 먹거리 문제를 논하면서 우리는 쉽게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는 농민들의 상황과 현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전 세계에 기아와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인구가 10억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소농과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영세민들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정작 농사를 지으며 먹거리를 생산하지만 굶주리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은 농민인권이 필요함을 뒷받침해 준다.

지난 해 9월 말 UN인권이사회에서 중요한 결의안이 통과됐다. 농민과 농촌지역 노동자들의 권리에 관한 UN선언을 제정하기 위한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올 해 7월 제네바에서 농민인권에 관한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많은 나라들이 농민인권선언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한국 정부는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농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신자유주의 무역정책을 펼치면서 밀양의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고 있는 정부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씨앗을 갈무리하고 언 땅이 녹기를 기다려 국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농사를 짓기 위해 내년을 준비하는 농민들의 권리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위태롭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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