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쓰는 농약, 부르는 게 값

가격표시제 시행 10년차, 제도 지키는 판매상 없어

  • 입력 2013.12.06 15:07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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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표시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제도를 지키는 판매상이 없어 농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사진은 각 농약마다 가격표시를 해놓은 농약판매소에서 업주가 농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한승호 기자〉

“가격대비 양과 성능을 보고 구입하고 싶은데, 농약이라는 게 농약방에서 부르는 게 값이다 보니 상당히 불편하죠. 같은 농약방에서 같은 농약을 사는데도 언제 구입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니 의심만 들고요.”

전남 순천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은 해마다 사용하는 농약의 ‘정가’를 몰라 일 년 농사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이같이 불편함을 호소했다.

2004년 12월 농약 가격표시제가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째. 그러나 이를 지키는 농약판매상은 드물다. 또는 보여주기 식으로 일부 제품에만 가격을 표시해놓고 있어 농약 가격표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약 가격은 현재 물가 안정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라 판매자가 실거래 가격을 표시하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판매자는 이에 따라 라벨과 스탬프 등의 방법으로 실거래 가격을 표시해야 하며, 표시 위치는 개별상품, 진열대 선반 아래, 가격표 게시 등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1차 시정권고, 2차 위반 시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에도 농약가격표시제는 좀처럼 시정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2013년 9월 현재까지 적발된 업소는 단 세 곳뿐.

충남 예산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조광남씨는 “단속된 곳이 그게 전부라니 말도 안 된다. 이쪽 지역만 해도 표시돼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며 “과태료까지 있는데도 농약판매상들이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말밖에 안 된다”며 정부의 허술한 단속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특정 농약회사별 대리점에서는 자사 제품에만 타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을 강조하기 위한 가격표시만 해놓는 등의 방법으로 교묘히 위반을 피하기도 한다는 것. 조씨는 “이러한 이유로 정가제를 도입한다 해도 잡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좀 더 강화된 정가표시제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권장소비자 가격도 말 그대로 ‘권장’일 뿐이다”고 지적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예산군농민회에서는 해마다 솟구치는 농자재값을 잡기 위해 시중가격보다 20% 저렴한 가격으로 농약을 판매하는데, 최근 인근 농협에서 이보다 100원 더 싸게 판매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농민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조씨는 이에 대해 “농민회에서는 마진을 생각하지 않고 시중가보다 20% 낮게 판매한 것인데, 농협은 자사에서 대체 얼마에 물건을 떼오는지 모르겠다. 어떤게 정가인지 알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금 쌀값은 정부에서 규제하고 있지 않느냐. 그걸 생산하기 위한 농자재도 규제해야 한다. 농자재는 풀어주고 쌀값은 묶어두고, 이건 공정거래위반 아니냐”며 10년째 농약 가격표시제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정부에 대해 강한 불신을 표시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열린 농촌진흥청 국정감사에서도 농약 가격표시제에 대한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당시 농촌진흥청은 1999년까지 시행한 권장소비자가격 표시제 도입방안 검토와 더불어 현행 판매자가격 표시제를 유지하되 단점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와 관련 농약가격표시제 공청회가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이번 공청회를 주최하는 신성범 새누리당 의원은 권장소비자가격 표시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주관 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두 가지 제도를 모두 들어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병희 농림축산식품부 소비정책과 주무관은 “실제 농민들은 농약가격표시가 됐으면 좋겠지만 이것이 농약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게 될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입장을 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조 주무관은 이어 “지금까지 적발 건수가 적었던 것은 원산지 표시가 아닌 가격표시다보니 지도 위주였기 때문이다. 현행 판매가격 제도로 가게 된다면 강력하게 과태료를 물게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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