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에 의한,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 입력 2013.11.30 02:11
  • 기자명 한경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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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시장 개방 이후 한국 농업은 위기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 결과 농민 생존권은 위협받고, 잇단 FTA 협상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파괴시키고 있다.

여성농업인 육성 정책과 각종 제도로 여성농민의 지위 향상을 비롯한 다양한 정책들이 제시된다 하더라도 농업 전체가 붕괴되는 상황은 여성농민의 생존과 삶의 질을 규정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농업의 보장, 식량주권 실현은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의 기반이다.

한국 농업의 회생과 식량주권 실현이라는 튼튼한 기둥 위에서 실현돼야 할 여성농민 정책은 현장 여성농민의 의견을 수렴한 성 평등한 관점의 농업 정책 수립과 이를 보장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현장 여성농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성 평등한 관점의 농업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 동안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농업농촌종합대책 및 매년 정부가 제기하는 주요 농업정책에는 여성농민에 대한 언급이 누락되어 있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복지 부분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농업정책의 경우 대상이 주로 농가 단위로 만들어지면서 이것이 남성과 여성 농민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부족했다. 그러다 지난 2002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성 평등한 관점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하여 각 부처별로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최근 들어 농식품부나 농촌진흥청 등 농업 관련 부처에서 성별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허나 성별영향평가 과정에서 여성농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통로는 찾기 힘들고 평가 결과에 대한 정보 교류가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2009년부터는 농업부문에 있어서 성인지 예산 분석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의 성인지 예산 분석 결과 1~3%대로 성인지 예산이 낮아 남성과 여성농민에게 동등한 예산 수립과 시행이 미흡함을 알 수 있다. 지금 현재 누구에 의해 여성농업인 정책이 수립되고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개선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여성농민에 의한,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 수립의 과정을 마련하기 위한 구조가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그 동안 정책 수립의 과정에서 여성농업인단체가 적극적으로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 과제를 제기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여성농민들이 현장에서 필요한 다양한 정책들을 찾아내 요구한다 하더라도 이를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없다는 사실이다.

중앙 정부 차원의 여성농업인육성정책 자문회의는 2011년에는 서면심의로 대체했고, 2012년과 2013년에 한 차례씩 개최되었다고 하지만 의견을 청취할 뿐 심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지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농업인육성지원조례 제정에 근거하여 1년에 두 차례씩 정책협의회를 개최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회의 한 번 개최하지 못한 지역이 허다하다.

이는 모호한 전담부서와 담당자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도와 시군에서 제아무리 좋은 여성농업인육성계획을 세운다한들 실행하고 점검할 수 있는 담당자와 부서가 없다면 정책은 무용지물이다. 시기별로 변화하는 다양한 여성농민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여성농업인단체와 이를 수렴하여 정책으로 만들고 집행해 나갈 지자체의 담당자, 연구와 분석으로 정책의 내실화를 기하는 전문가의 유기적인 논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나아가 여성농민정책은 농촌 사회의 전반적인 성 평등 인식 변화를 필요로 한다. 농촌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 모두가 성 평등 인식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최근 UN에서 논의되고 있는 <농민인권선언>에 따르면, 농민은 남성과 여성농민 모두를 포함하며 제 2조 농민의 권리에서는 “모든 농민,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성과 남성 농민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갖고 농업 정책에 있어서 차별과 배제, 억압이 사라지는 사회를 꿈꾸며 여성농민들은 오늘도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있다. 우리 여성농민들이 뿌리는 씨앗이 조금 더 나은 사회를 싹틔우는 변화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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