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자급을 꿈꾸다

대안적 삶을 찾아서 도시농업시민협의회

  • 입력 2013.11.11 06:11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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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농경에서 멀어진 도시를 이루고 산지는 불과 이백 년 미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두어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거의 모든 인구가 농업인이었다. 그것은 지금은 메갈로폴리스가 되어버린 서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전적으로 농업 생산에 의지하지 않는다 해도 골목길과 마을 사이에 논밭이 펼쳐지고 그 생산물이 지역에서 소비되는 구조가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급속한 공업화의 진행과 농촌인구의 유입으로 인한 폭발적인 인구증가가 겹치면서 도시는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회색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정신적으로도 농업의 피폐와 맞물리면서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사는 것’, 즉 도시에 정착한 삶을 성공의 척도로 여기게 되었다. 농민들은 자신은 비록 농사를 짓지만 자식만은 서울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농촌은 어서 떠나야 할 곳으로 변해버렸다, 기나긴 농경사회를 유지해온 우리나라에서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놀라운 변화였다. 

  경제개발과 물신에 대한 욕망이 팽배하면서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산다는 것은 일종의 자부심이자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기도 했다. 남이 가꾸거나 생산한 신선한 채소나 가공식품을 부담 없이 사먹을 수 있다는 경제적 자신감은 삼십여 년만 해도 그리 많은 사람들이 향유했던 일은 아니었다. 유례없는 산업의 팽창으로 우리나라는 반도체나 자동차, 수출의 이미지로 세계에 각인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농산물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듣고 놀라는 외국인들이 많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농업은 되돌릴 수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스로 손에 흙을 묻히고자 하는 도시인들이 생겨난 것이었다. 도시농업의 탄생이었다.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농업행위를 뜻하는 이 단어가 생겨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이 갑자기 빈곤해져서 텃밭에서라도 먹을거리를 생산하고자 해서였을까? 아니면 잃어버렸던 농심을 되찾고 싶어서였을까? 유감스럽게도 둘 다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도시농업이 생겨나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지나치게 넘쳐나는 먹을거리 때문이었다.

            도시농업의 발자취

  우리나라에서 도시농업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수입파동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대규모 촛불시위로도 수입을 막지는 못했지만 안전한 밥상이라는 위기의식은 커다란 사회적 파급력을 낳았다. 밥상에 대한 불안은 친환경유기농산물의 소비가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다시 내가 먹을 것을 직접 키워서 먹겠다는 도시농업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니까 수입농산물에서 촉발된 불안이 도시농업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알지도 못하는 먼 타국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지어진 농산물인지, 어떤 처리과정을 통해 들어온 것인지 소비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중국 농산물에 대한 불안감은 가히 공포 수준에 이르렀다. 뉴스를 통해 불량 농산물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된 중국농산물은 이미 광범위하게 우리 식탁을 점령한 터라, 이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재배해서 먹는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두 번째 커다란 계기는 2011년의 배추 파동이었다. 배추 한 포기 값이 만오천 원까지 치솟자 도시 소비자들은 허탈을 넘어 분노감마저 품는 지경이 되었다. 배추가 비싸면 양배추를 사먹으라는 대통령의 말이야 철없는 농담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지만 김치조차 먹을 수 없게 된 서민들의 분노는 직접 내가 키워서 먹겠다는 먹거리에 대한 최소한의 자급의지로 나타났다. 모든 것을 돈으로 사야 하는 완벽한 소비 중심의 도시에서 배추 한 포기나마 내 손으로 키우겠다는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도시농업은 이미 씨앗을 틔우고 있었다. 1992년, 서울에서 시작된 주말농장은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가 주도한 주말농장은 그러나 곧 한계에 부딪쳤다. 서울에 농지가 부족하자 경기도 인근에 대규모 주말농장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분양했는데, 주말이면 교통정체가 심해 농장을 오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친환경유기농이라는 원칙도 세워지지 않아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시민의 요구를 충족시키지도 못했다. 공무원이 주도한 주말농장은 낭만적인 이름에 걸맞게 현실에 대한 인식이나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갖지 않았다는 한계를 품고 있었다.

  도시농업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도시를 바꾸어 나가는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2004년,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귀농 실습지로 시작한 도시농업이었다. 실습지에서 배우고 귀농하는 사람들은 농촌으로 떠났지만 실습지에서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은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도시 사람들이었다. 농사가 절실한 사람들은 바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도시농업을 탄생시킨 깨달음이었다.

  이후 귀농운동본부에서는 도시농부학교를 열었고 시민농장이 개장되었다. 시민농장은  경기도 군포, 안양, 고양에서 시작되어 서서히 수원, 시흥, 퇴계원 등지로 확대되며 이후 도시농업 열풍의 기초가 되었다. 여기에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가 함께 하면서 도시농업의 큰  기둥이 되었다.

 (잠시 소개하고 넘어가자면,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2007년 농업을 주제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되었으며, 정회원은 140여 명이고 온라인 회원도 5천800여 명에 이른다. 매년 도시농부학교와 도시농업 전문가 과정 등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공동체 텃밭과 생태텃밭교실, 옥상텃밭 등 다양한 텃밭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저탄소 녹색성장과 도시농업 활성화 2개 부문에서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 외곽에서 조용히 진행되던 도시농업운동이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이 ‘상자텃밭’ 보급 사업이었다. 땅이 없는 도시에서 농사를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상자 텃밭은 신선하게 다가왔고 이는 곧 커다란 열풍이 되었다. 광역시를 중심으로 상자텃밭 보급이 전개되어 도시농업을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옥상이나 베란다 같은 공간에서 직접 작물을 심어 수확을 한다는 것은 도시농업의 아이콘처럼 되었고 대단한 파급력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상자텃밭은 이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농업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부정적인 역할도 했다. 상자로 쓰인 용기가 대부분 플라스틱이었고 흙 대용으로 쓰이는 인공 흙들이 전부 수입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농사도 잘 되지 않으면서 맛도 떨어졌다.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만큼 포기도 쉬워서 자칫 쓰레기를 양산할 가능성도 많았다. 

  2009년, 농촌진흥청에 도시농업팀이 생기고 (사)한국도시농업연구회가 창립되면서 관의 도시농업 참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도시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에는 도시농업팀이나 업무분야를 두어 활발하게 관 주도형 도시농업을 이끌고 있으며 특히 경기도처럼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관내에 농민보다 도시민이 많은 지역은 농업기술센터의 주 역할이 농민보다 도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농업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다. 관의 참여는 도시농업지원조례 제정에 큰 힘이 되었으며 2012년 현재 전국 25개 지역에서 조례가 제정되었다. 급기야 2011년에는 국회에서 도시농업육성법률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0년에는 서울에서 최초로 강동구에서 도심 주택가에 ‘도시텃밭’을 조성하여 분양하였는데, 인터넷으로 접수한 분양에서 단 오 분만에 매진이 되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이래 서울에서 도시농업정책은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했다.

광화문 한복판에 상자 논을 만들고 한강 노들섬에 오천 평의 노들텃밭을 만들어 도시농업 바람을 주도했다. 바람은 전국적으로 번져나가 경기도 안산에는 전국 최대인 이만 평의 도시텃밭이 조성되었고,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지로 확산된 도시농업은 전국적인 힘을 총집결하여 도시농업시민협의회를 일구어내기에 이르렀다. 2012년 3월 8일에 발족한 협의회에는, 텃밭보급소를 비롯해 서울그린크러스트,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여성환경연대, 대전도시농부학교, 대구녹색소비자연대, 부산도시농업시민협의회, 광주귀농학교 등 31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자급과 공동체 문화의 복원을 위해

 

도시농업시민협의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도시농업운동의 성격을 이렇게 천명했다.
  “물도, 먹을 것도, 에너지도 모든 것을 외부에서 끌어오지 않으면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사막과 같은 도시에서 농사짓는다는 것은 절실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문명이 가는 앞길에는 숲이 있고 뒤에는 사막이 있다’는 말이 지금처럼 절박할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막만 우리 뒤에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 목숨을 지탱해주는 먹을거리가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되어 오고 있습니다. 식량주권이 위태로워진 것입니다.……먹을 것을 자급하는 일은 생명 본연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인간 말고 지구상 어느 미물도 먹을 것을 스스로 자급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도시농업은 생명으로서 자급하는 의무와 권리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게 되면 국민 모두 농부가 될 수 있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직접 농산물을 심고 키운다면, 그것은 커다란 희망이 될 수 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우리가 흙을 멀리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 본성을 회복하지 않고는 작금의 비인간화, 소외, 물신숭배를 극복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도시농업을 통해 그 회복의 단초를 찾는 게 가능해진다면 이는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작은 시작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도시농업은 직, 간접적인 많은 이점이 있다.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첫째로 가장 중요한 기능이기도 한 안전한 먹거리 생산만 보더라도 단순한 먹거리의 차원을 넘어서는 가능성이 있다. 도시농업이 농촌에서 짓는 농사와 가장 질적으로 다른 점이기도 한데, 도시농업을 하면서 생산된 농산물을 판매하여 소득을 올리고자 하는 시민은 없다. 생산된 농산물은 가족이 자체적으로 소비하거나 남는 것은 가까운 이웃과 나누게 된다. 이는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는 농산물로서의 가치에 더해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나눔과 공동체의 복원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로 도시농업은 도심 내에 녹지 공간을 확보하여 콘크리트 일색의 도시에서 다양한 공간에 식물을 재배하므로 쾌적한 도시를 만들 수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녹지공간이 도시의 경관조성으로 이어져 산소공급과 대기정화, 도시의 미관 향상에 기여한다. 무분별하게 진행된 도시화는 지하수 문제와 수자원의 보존, 그리고 홍수 예방 및 조절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

녹지 공간의 확보는 대기 및 수질 정화, 대기를 냉각하고 산소를 공급하여 도시에서의 삶을 보다 쾌적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된다. 또한 도시농업을 통하여 옥상텃밭, 자투리 텃밭 등에서 재배되는 각종 농작물이나 과수, 꽃 등이 계절별로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여 도시민들의 마음을 위무하는 기능을 함과 동시에 농업을 보다 가깝게 여길 수 있게 할 것이다.

  도시는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철저히 소비만 하는 도시, 쓰레기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도시는 생명이 살고 공동체가 복원되는 도시로 바뀌지 않으면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이다. 더구나 바야흐로 붕괴의 길로 나아가는 농업의 위기는 식량위기, 에너지 위기, 기상 변화로 인한 재해의 위기와 함께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우리에게 심각한 위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를 대비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도시농업은 극히 중요한 화두이다. 우리가 도시농업에 더 주목하고 다양한 참여를 이끌어내야 할 당위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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