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안 되면 나락 싣고 서울 가겠다”

  • 입력 2013.11.10 19:55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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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곡창지대인 전북지역 시군별 나락 적재투쟁 현장은 ‘이번엔 못 참는다’는 농민들의 결기가 높았다. 적재 투쟁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쌀 목표가격 인상이 대농만 배불려 농가 소득 편차가 커질 것이란 정부의 선전과 달리 소농들에게 더 절실한 사안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익산시 함라면의 김태완씨는 익산시청 나락 적재투쟁 전날인 5일부터 지역을 돌며 적재할 나락을 모았다. 김씨는 “농민회 회원들이 농민들을 만나 십시일반 나락을 모으고 있다”며 “함라면에선 톤백 11개를 모았는데 이외에도 쌀 투쟁에 어떻게든 동참하려는 농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 쌀 목표가격 23만원 쟁취,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도입 등을 요구하는 전국 동시다발 시군 나락적재에 동참한 정읍 농민들이 지난 6일 시청 앞 주차장에 ‘톤백’을 쌓아 올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2톤의 벼를 선뜻 적재투쟁에 내놓은 함라면의 왕귀동씨는 “임차농은 임차료에 비료대 나가면 수익이 없다”면서 “1년 농사지어도 농기계를 들이면 빈손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함라면사무소 앞에서 적재투쟁에 동참할 농민들과 합류하자 면장이 경찰과 함께 주위를 서성거린다. 지난 9월부터 일반 공무원들도 농민들의 동태를 살핀다는 현장의 귀띔이다.

익산시청 앞은 이른 아침부터 톤백을 짐칸에 채운 트럭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성당면의 박병석씨는 “도착해서 30분 정도 기다렸다”며 이런 기다림은 반갑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6년 전에 귀농했다는 박씨는 “쌀값이 이래선 소농들은 매우 곤란하다”며 “농민들이 단합해 쌀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웅의 익산시농민회 사무국장은 “대농은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지만 소농은 임대해서 써야한다”며 “농가 소득 격차가 문제라면 소농들을 위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주장은 쌀 목표가격을 억제하려는 심산일 뿐 농가 소득 편차 해결을 위한 게 아니란 지적이다.

익산시농민회는 익산시청 앞 나락 적재현장 옆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쌀 목표가격 23만원 보장 ▲공공비축 수매제 폐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시 ▲쌀 전면개방 저지 ▲고정직불금 100만원 공약이행 ▲농협수탁수매 폐지를 요구했다. 이날 익산시농민회는 톤백 120개를 시청 주차장에 적재했다.

전국 농민들의 시·군 나락적재 투쟁은 전북 정읍에서도 이뤄졌다. 이날 오전 수십여 대의 트럭을 몰고 정읍시청에 온 농민들은 톤백 110개를 시청 주차장에 쌓았다. 황양택 정읍시농민회 사무국장은 “인건비, 비료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반면 쌀값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라며 “정부가 쌀 생산비를 보장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정읍의 일부 농민들은 시청으로 가기 전 동학농민운동의 최초 봉기 장소였던 이평면 두지리 말목장터에 모여 쌀값 및 나락적재에 대한 의견을 서로 교환하기도 했다. 이평면의 김석훈씨는 “10여 년간 통제했던 쌀값을 고작 4,000원 올리겠다는 말은 죽으라는 말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덧붙여 김씨는 “농민들이 일 년 농사의 결실을 시청 앞에 쌓더라도 정부의 자세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나락을 싣고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승호·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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