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 이분법 깬 ‘627일’

  • 입력 2013.10.27 14:29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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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선 밀양 송전탑 반대 릴레이 765배가 열렸다. 그 옆에는 조성제 신부가 20일째 단식농성 중이었다. 밀짚모자를 깊이 눌러쓴 조 신부는 초가을 햇볕에 바짝 말라버린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2일 단식에 들어가며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을 지역이기주의 혹은 외부세력에 선동된 주민들로 몰아붙이는 한전과 언론의 행태에 분노했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대부분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는 게 조 신부의 항변이다.

강원도에서도 밀양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홍천 구만리 골프장 사업은 8년 동안 지역주민들을 괴롭히는 난제다.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인 박성율 목사는 “구만리 골프장 실소유주인 박덕흠 새누리당 의원은 지역구인 옥천에선 골프장 사업을 반대했었다”며 “그렇다면 구만리 골프장도 스스로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박 목사는 지난 22일 강원도청 앞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그동안 보상을 원해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며 8년 동안 쌓인 울분을 격앙된 어조로 토해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같은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집단이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 이들은 밀양 송전탑 문제엔 ‘외부세력이 국가기간사업을 흔든다’는 선동을 멈추지 않는다. 홍천에선 ‘골프장이 들어서야 지역이 발전된다’며 지역주민들을 이간질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에서도 드러난다.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조영곤 지검장이 국정원 직원에 대한 강제수사 계획을 듣고 “야당 도와줄 일 있냐”고 격노했다고 밝혔다. 진실보다 편 가르기에 집착하는 이런 모습들이 나라꼴을 이 모양으로 만든 게 아닐까.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가톨릭 성직자가 스스로 곡기를 끊은 건 송전탑 건설에 더 많은 생명이 걸렸기 때문이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전하는 목사가 험한 말을 내뱉은 건 고통 받는 약자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은 치매 아내를 간병하던 72세 할아버지가 해군기지 반대운동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자 627일에 달하는 대체복역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어찌 이런 행동이 얄팍한 편 가르기에서 나올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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