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거기에 사람이 있다. 수확 시기를 놓친 깻잎 따던 손 툭툭 털며 산 중턱으로 향하는 할머니가 있다. 벼멸구로 인해 누렇게 삭은 들녘 바라보며 굽은 등 뒤로 뒷짐 진 할아버지가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면 누가 이 땅, 이 자연 지키겠냐며 최소한의 일손이나마 돕고 싶다며 모여든 사람들이 있다. 한국전력의 765,000볼트(765kV) 고압송전탑 건설 강행에 맞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다.
밀양시 단장면 태룡리 용회마을에 사는 올해 일흔 살의 장씨 할머니의 “바드리(송전탑 건설예정지) 간다”는 말은 곧 송전탑 막으러 간다는 말의 동의어다. 그녀는 “국민 없는 나라 없고 주민 없는 전기 필요없다”며 매일 밤 바드리마을로 간다. 오곡이 익어가는 가을임에도 논일, 밭일보다 공사 반대가 우선이다.
바드리마을로 가는 길목에 농성장이 있다. 얇은 매트, 네 귀퉁이를 나뭇가지에 묶은 비닐 지붕이 농성장의 전부다. 이곳에서 주민들이 노숙을, 밤샘농성을 한다. 마을별, 가구별로 조를 짜 하루도 빠짐없이 농성장을 지킨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후대를 걱정하는 7~8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비탈진 거리에 앉거나 눕는다. 전등 하나 없는 농성장에 3~4개의 양초만을 켠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송전탑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주민의 목소리를 ‘듣보잡’ 취급하는 국가의 횡포에, 보상 몇 푼 운운하는 자본의 비열함에 치를 떠는 주민들이 오늘 또 하루 불편한 잠을 청한다. 누워, 이슬 맺힌 비닐 지붕을 바라보니 주민들이 매단 하얀 광목천이 바람에 펄럭인다. 문구가 아프다. ‘다 죽이고 공사해라.’ 밀양, 거기에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