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장씨 할머니의 “바드리 간다”

사진이야기 農·寫 농사일보다 송전탑 반대가 우선 … “주민 없는 전기 필요없다”

  • 입력 2013.10.13 22:06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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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회마을도 송전탑 건설예정지다. 깻잎 하우스 왼편으로 보이는 봉우리에 765,000볼트 고압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다. 건설될 경우 마을 위로 송전선로가 지난다. 바로 그 송전선로가 바드리마을로 향한다. 장씨 할머니가 "바드리 간다"고 말하는 이유다.

 

▲ 바드리마을 송전탑 건설 현장으로 통하는 길목에 주민들의 농성장이 있다. 비탈진 경사에 놓인 얇은 매트, 비닐 지붕이 농성장의 전부다. 7~80대 노인들이 이곳에서 잠을 청한다.

 

▲ 밀양의 시민단체인 '너른마당' 회원들이 휴일로 재지정된 한글날을 맞아 농촌 일손돕기에 나섰다. 송전탑 반대 싸움과 수확철 농사일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하는 농민들에겐 든든한 지원군이다.

 

밀양, 거기에 사람이 있다. 수확 시기를 놓친 깻잎 따던 손 툭툭 털며 산 중턱으로 향하는 할머니가 있다. 벼멸구로 인해 누렇게 삭은 들녘 바라보며 굽은 등 뒤로 뒷짐 진 할아버지가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면 누가 이 땅, 이 자연 지키겠냐며 최소한의 일손이나마 돕고 싶다며 모여든 사람들이 있다. 한국전력의 765,000볼트(765kV) 고압송전탑 건설 강행에 맞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다.

밀양시 단장면 태룡리 용회마을에 사는 올해 일흔 살의 장씨 할머니의 “바드리(송전탑 건설예정지) 간다”는 말은 곧 송전탑 막으러 간다는 말의 동의어다. 그녀는 “국민 없는 나라 없고 주민 없는 전기 필요없다”며 매일 밤 바드리마을로 간다. 오곡이 익어가는 가을임에도 논일, 밭일보다 공사 반대가 우선이다.

바드리마을로 가는 길목에 농성장이 있다. 얇은 매트, 네 귀퉁이를 나뭇가지에 묶은 비닐 지붕이 농성장의 전부다. 이곳에서 주민들이 노숙을, 밤샘농성을 한다. 마을별, 가구별로 조를 짜 하루도 빠짐없이 농성장을 지킨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후대를 걱정하는 7~8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비탈진 거리에 앉거나 눕는다. 전등 하나 없는 농성장에 3~4개의 양초만을 켠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송전탑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주민의 목소리를 ‘듣보잡’ 취급하는 국가의 횡포에, 보상 몇 푼 운운하는 자본의 비열함에 치를 떠는 주민들이 오늘 또 하루 불편한 잠을 청한다. 누워, 이슬 맺힌 비닐 지붕을 바라보니 주민들이 매단 하얀 광목천이 바람에 펄럭인다. 문구가 아프다. ‘다 죽이고 공사해라.’ 밀양, 거기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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