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와 소비자, 얼굴을 맞대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언니네텃밭’

  • 입력 2013.09.29 21:23
  • 기자명 소설가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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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10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은 뉴욕에서 세계식량주권상을 수상했다. 전여농이 이 상을 수상하게 된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농업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상으로 세계식량상이라는 게 있다.

 

이 상은 기술을 통해 획기적인 증산을 이루거나 새로운 농업기술을 개발한 과학자가 주로 받는다. 전여농이 받은 세계식량주권상은 그와는 달리 불공정한 세계식량체제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이 제안하는 대안에 주목하는 상이다. 네 번째 수상자인 전여농 이전에 받은 단체가, 전 세계 소농들의 연대조직인 비아 캄페시나, 미국의 ‘가족농협회’,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단체 등이었다. 

  세계 15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농업비중이 GDP 대비 2%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여성농민운동단체가 세계식량주권상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농업과 식량문제가 세계식량체제 속에서 위험한 위치에 처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전여농이 펼치는 운동이 세계적 공감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크게 전여농의 ‘언니네 텃밭’과 ‘토종씨앗지키기운동’이었다. 이 글에서 주로 살펴볼 ‘언니네 텃밭’ 사업은 여성농민들이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한 건강한 제철 농산물을 소비자 회원에게 배송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단순한 직거래 사업이 아니다.

식량은 주권이다

  지금은 언니네 텃밭이 상당히 알려졌고, 그에 더해 수없이 많은 유사한 곳도 생겨났지만 애초에 언니네 텃밭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수출 위주의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대규모 기업농과 초국적 농기업이 농업을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그에 따라 소농의 몰락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파괴하였다.

소위 녹색혁명 농업이라는 것은 대규모 단작과, 농약과 화학비료의 무차별적 사용, 석유의존형 농업 형태를 고착화시킴으로서 환경문제와 기후문제를 전 지구적으로 야기하였다. 농업이 산업화하면서 대규모 기업농의 돈벌이 수단으로 농업이 전락하였고 유전자 변형이나 광우병 등 먹거리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저항과 대안으로 시작된 것이 언니네 텃밭이라고 할 수 있다. 언니네 텃밭이 걸어온 길을 잠시 일별해보자.
  
  

2005년, 전여농은 여성농민이 생산자로서 할 수 있는 통일운동에 대한 고민을 통해 통일 텃밭가꾸기 사업을 제안한다. 2006년에는 북한에서 제공한 토종씨앗을 여성농민들이 키워 일정정도의 수익금을 만들어 이를 다시 북한에 지원할 수 있는 통일기금을 만들었다. 토종씨앗을 이용한 유기농 방식의 공동경작 원칙을 세우고, 북한의 토종 종자인 들깨, 참깨, 줄땅콩을 배포하였다.

기후변화와 초국적 농기업의 지배로 식량위기가 주기적이고 보편적이며, 세계적 차원이라는 점을 주시하여 세계적 연대와 대안활동으로 국제농민운동조직 비아캄페시나 생물다양성위원회에 참가한다. 2007년, 토종씨앗 지키기 활동을 하는 단체, 개인들과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토종씨앗의 보존과 보급에 더해 전국적인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위한 교육과 전문가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2008년, 토종씨앗지키기 네트워크 <씨드림>을 구성, 유전자원 실태조사와 토종씨앗 채종포를 만들어 토종씨앗을 지키고 있으며, 여성농민 1농가 1토종 종자 지키기 사업을 5개 도, 50여 명의 참여로 시작하였다. 서울환경운동연합 등과 함께 토종씨앗을 지킬 수 있는 소비체계를 갖추기 위해 전국여성연대와 식량주권지킴이단 사업으로 사회적 연대를 맺어나갔다.

첫 사회적 연대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를 쌓았고 언니네 텃밭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2009년, 서울환경운동연합, 여성민우회 생협, 전국여성연대 등 토종씨앗 지키기 사업이 확대되고 토종씨앗 채종포 사업은 전국 13곳으로 확산되었으며 유전자원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2009년, 노동부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언니네 텃밭의 전신인 <우리텃밭>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제철꾸러미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강원도 횡성에서 첫 꾸러미를 배송한다. 같은 해 7월 경북 상주, 안동 금소, 제주 우영 생산자공동체가 형성되고 지속적인 생산자와 소비자 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한다.

12월에는 소비자들의 참여로 우리텃밭에서 <언니네텃밭>으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2011년, 여성농민 생산자 공동체 지원과 소득 창출, 생산과 유통의 변화를 통한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아 노동부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되었다. 현재 16개 지역 생산공동체에서 여성농민 생산자들이 제철꾸러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언니네 텃밭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제철꾸러미다. 언니네 텃밭 제철꾸러미는 마을 또는 면 단위의 생산자 회원이 공동체를 만들어서 참여하고 있다. 텃밭은 각자 자신의 밭이지만, 함께 생산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을 통해 서로 씨앗을 나누고, 누가 무엇을 언제 얼마나 심을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농사는 수시로 함께 하는 작업을 통해 진행되며, 잘 자란 농작물은 공동작업을 통해 포장되고 택배를 통해 배송된다. 이를 위해서는 매주 얼마나 자랐는지 이야기하고, 어떤 품목을 보낼 것인지 함께 계획하는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제철 꾸러미를 싸는 날은 동네 잔칫날이 되기도 한다. 소비자 회원도 꾸러미 싸는 날에 함께 참여할 수 있으며 생산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으며 진행되고 있는 제철꾸러미는 매주 발송하는데, 소비자는 25,000원 정도에 받아볼 수 있다. 가족 수나 소비량에 따라 매주 받거나 격주로 받을 수 있고 1인 가정을 위한 꾸러미도 있다. 보통 4인 가족 정도면 월 10만원으로 매주 신선한 먹거리를 받아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제초제를 치지 않고 저농약 이상의 친환경 농산물을 보내는데, 제철 생산물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품목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고정적으로 오는 것은 우리콩 두부와 방목한 닭이 생산한 유정란 정도이다. 꾸러미 안에는 보통 곡류, 채소류, 나물류, 과일류 등 텃밭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7~9 가지의 농작물이 들어있다.

일반 마트에서 구하기 어려운 산나물이나 나물 등으로 입맛과 식생활이 바뀌었다는 소비자도 많다. 인스턴트에 길들어진 입맛을 바꾸고 외식을 자제하게 되는 등, 건강과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이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소비자가 꾸러미를 신청하면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언니네 텃밭 공동체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두부와 유정란은 사계절 기본 품목이며 생산량이 많으면 많이 넣기도 하고, 겨울철에는 말린 나물 종류나 장아찌 등 저장식품을 담는다. 게다가 전통 농경문화가 담겨 있는 절기 음식을 되살려내기도 한다. 동지에는 팥죽거리를 담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오곡밥과 나물이 담긴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전통 방식의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생산자들은 매주 화요일에 직거래 소비자들에게 보낼 농산물 꾸러미를 싸고 발송한다.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싸기도 하고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깔끔하게 손질되지도 않았지만, 방금 수확한 것들이고 냉장 기능이 있는 꾸러미에 담기에 싱싱함이 유지된다.

생산자들은 무농약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이들이 내세우는 공동체 운영 모토도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도시소비자가 함께 만들어 나가자’이다. 자신의 얼굴을 걸고 농민의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와 만나겠다는 의지는 작지만 중요한, 현 식량체계에 대한 도전이다.

  언니네 텃밭은 일반적인 생협과도 차별성이 강하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방식의 농사라는 점은 같으나 비닐하우스 등의 인위적인 방법은 쓰지 않고 제철농사만 고집한다. 생협들이 점차 규모화하면서 로컬푸드에 대한 인식이 옅어지고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는 이즈음의 상황에서 언니네 텃밭 방식이 대중적인 확대를 지속적으로 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언니네 텃밭은 소농들이 다양한 품종을 재배함으로써 우리 땅과 기후에 잘 적응하는 토종씨앗을 보존하고, 이로써 식량주권도 확보하는 길임을 믿고 있다. 

  또한 언니네 텃밭은 소비자 회원의 권리이자 의무로 농사체험을 위해 생산지를 방문하도록 하고 있다. 작물을 심어보기도 하고 수확물을 거두는 체험을 해봄으로써 농사의 소중함을 배우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소통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이다.  

  언니네 텃밭은 소위 ‘고객은 왕이다’라는 자본주의적 마케팅 방식을 거부한다. 겉으로 왕이라고 하며 친절을 베푸는 속내에는 고객을 사람이 아닌 물신으로 보는 계산이 숨어있을 뿐이다. 대신에 언니네 텃밭은 고객에게 불편해도 참고 먹으라고 요구한다. 당장 입에 달고 편한 음식이 아니라 직접 요리해서 먹으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가능한 농업과 환경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런 요구를 받고 요구를 받아들인 소비자는, 그 자체로 윤리적이고 가치 있는 소비를 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여성농민들이 창조해낸 이 시대의 중요한 가치이다. 

  여성농민들이 자기 이름으로 통장을 열고 그 통장에 매월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온다는 것도 자존감을 크게 높여주는 일이다, 그 동안 여성농민은 무급가족봉사자, 혹은 보조적인 농업인으로 여겨지는 존재였다. 그러나 언니네 텃밭을 진행하며 여성농민들은 자신이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소비자와의 교류와 만남을 통해 보람과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언니네 텃밭은 2012년에 34,000개 이상 제철꾸러미를 발송했다. 해마다 15%이상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소비자 회원은 2,000여명이다. 여성농민들은 평균적으로 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농촌 소득이다. 소비자 가격의 80%가 생산자에게 가는 구조라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2011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농산물 직거래 비중은 전체 농산물 유통량의 4%에 불과하다. 정부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을 통해 2016년까지 직거래 물량을 전체의 10%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직접 제철꾸러미를 언급하며 직거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니네 텃밭이 가꾸어온 먹거리에 대한 고민과 철학까지도 담아낼지는 의문이다. 아니, 의문이 아니라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다. 거듭되는 농민부재, 농민말살 정책들이 이미 그 증거가 되고 있다. 단순히 유통마진을 줄여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싼값에 공급한다는 정도가 그들이 농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인 것 같다.

      식량주권의 실현을 위해   

 언니네 텃밭은 아직 그 의미에 비해 성과가 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먹거리, 농업에 대한 투기자본의 침투, 농약과 비료, 유전자조작 등에 의한 위험한 먹거리 등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데 크게 기여했고, 현재의 식량체계가 바뀌어야하는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언니네 텃밭은 식량주권을 선언만으로 알려내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사업을 통해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 먹거리를 중심으로 식량주권 실현의 의미를 나누는 사업이다. 소규모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들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를 통해 친환경적인 농업방식으로 다양한 품종의 먹거리를 생산하였다. 생산자의 정성에 소비자의 호응이 합쳐지면서 대규모 단작농사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소비자가 농업과 농민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신뢰하며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소중하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된 먹거리 체계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단절시켰다. 도시에 사는 소비자는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경로와 누구의 손을 거쳐 오는지 모르고 마치 공장에서 생산한 물품처럼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고 소비해버린다. 고작해야 정부에서 고시하게 한 원산지 표시 정도를 보고 먹거리를 선택할 뿐이다. 위험하고 왜곡된 식생활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실에서 언니네 텃밭이 일구어온 식량주권 실현의 길은 분명 한국농업의 지향점을 보여주었고, 새로운 사회 변화의 씨앗이 되어 움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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