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27회

  • 입력 2013.09.16 02:34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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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녘 제1장 마을 “근데, 형님. 이 손익계산서라는 거 보고 제가 참 놀랬어요.” 한동안 말이 없던 경태가 소식지 한 쪽을 펼치며 준석에게 내밀었다.

글씨가 작아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보아도 무슨 말인지 모를 내용이었다. 농협에서 대의원 총회를 할 때 대의원들에게 나누어 주며 설명을 할 때도 그저 건성으로 들여다 볼뿐 내용을 뜯어볼 재주가 없었다. 우선 쓰여 있는 말들이 어려웠다. 대출채권 평가이익이니, 대손상각비니 하는 다른 나라 말들부터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물어보았다가는 농협 일에 딴지나 거는 별종쯤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총회에서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내용을 두고 꼼꼼하게 따지던 봉곡마을 대의원 하나는 그예 대의원을 그만두었다. 외지에서 들어와 준석과는 별로 안면이 없던 그는 주로 직권 급여와 교육지원사업비 등을 묻고 따졌는데, 대답하던 조합장이 당황하여 얼굴이 벌개졌었다. 그의 말이 지금은 자세히 생각나지 않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십 분이 넘게 공방이 오가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던 일부 대의원들이 웅성거렸다. “거, 조합장이 그만치 알어듣게 답변했으믄 그만허지, 그려.” “여가 감사허는 자리두 아닌데, 뭘 그리 따지는가? 자고로 말이 많으믄 공산당인디.”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식둑거리는 자들은 주로 조합장의 측근으로 여겨지는 자들이었다. 준석은 봉곡 대의원을 편들어 한 마디 하려는 생각에 정식으로 발언권을 신청하고 싶었으나, 옴죽거리던 손을 끝내 들지 못했다.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은 결국 중뿔난 놈 취급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봉곡 대의원이 그만두게 된 데도 이런저런 소문이 떠돌았다.

조합장 이상태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압력을 가했다고도 하고, 대출을 빌미로 회유를 했다는 말도 있었다. 하여튼 경태가 손익계산서 운운하자 몇 년 전의 그 사건이 떠올랐던 것이다.

“솔직히 난 봐도 뭔 소린지 잘 모르겠어. 뭐, 조합에 감사가 따로 있으니께 거기서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겄지, 하고 넘어가는 편이지.”

“글쎄요, 제가 여기 나온 임원 명단을 보니까, 감사 두 분이 다 저도 알만한 분들이더라고요. 형님은 더 잘 아시겠지만 지금 조합장님하고 엄청 가까운 분들 아녀요?”

그건 그랬다. 이사회에서 선임한 감사는 조합장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이사로 있는 이들도 오래 전부터 농협 일에 간여했거나 농협에서 하는 경제 사업 따위에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는 편이었다. 재작년에도 제일 오래된 이사인 김주선이의 땅을 농협에서 사들이면서 평당 사십오 만원을 책정하여 뒷말이 무성했던 적이 있었다.

농협에서 주유소 사업을 하기로 하고 그 부지로 김주선의 논을 사면서 시가보다 높은 값을 치렀던 것이다. 김주선이 워낙 면내의 유지고 뒷말이 나오자마자 당시 거래되던 주변 지가 자료 등을 제시하며 해명에 나서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젊은 축들을 중심으로 그를 문제 삼으려 하기도 했었다.

“제가 아직 꼼꼼하게 들여다보진 못했는데요, 참 놀라운 게 있어요.”

“놀랍다니 뭐가?”

“여기 좀 보세요. 농협에서 일년 동안 매출을 올리고 이익을 본 제일 큰 항목이 신용사업, 그러니까 이자놀이예요. 이익 중에 사십오 프로가 그 수입이고 그 다음에 많은 게 판매사업인데 그 비중이 십오 프로 밖에 안 되요. 농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농약이나 자재 비율은 두 가지 다 합해 봐야 사 프로도 안 되구요.”

경태가 주워섬기는 말이 쉽게 들어오지 않으면서도 준석은 책자를 햇빛이 들어오는 문쪽으로 대고 들여다보았다. 어쨌든 농민들이 일 년 내내 붐비고 발길이 가장 잦은 곳이 농약과 자재를 파는 자재과이고 몇 해 전에 자재 창고도 다시 크게 지었는데, 그 비중이 고작 사 프로도 안 된다는 게 좀 이상하기는 했다.

“물론 농협에서 농약이나 자재를 농민들한테 싸게 공급하기 위해서 이익을 조금 남겼을 수는 있어요. 제 말씀은 신용사업, 그러니까 이자놀이가 너무하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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