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시간을 내어 동네 어르신들과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옛날에 추석 지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뒷집 할머니도, 이장네 어머니도 모두 여기서 계속 살 생각이 없이 담배 농사를 몇 년 지어 돈 많이 벌면 멀리 남원 시내로 나가 살려고 했었다 하신다.
그리고 저기 저 건너 낙엽송 심어진 곳이 옛날에는 모두 담배밭이고 감자밭이었다고 알려주신다. 그곳은 밭이 있었을 것 같지 않고 보기엔 그냥 깎아지른 듯한 산이다. 추석 음식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옛날 어렵게 살던 때를 떠올리게 되어 죄송하기도 하였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때로 기억한다. 허례허식을 없애야 한다면서 정부에서는 민초들의 관혼상제에 관한 기준을 정하여 가정의례준칙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학교에서는 가끔 시험도 보았다. 그래서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중의 하나가 차례상과 제사상의 음식들이다. 그런데 그 음식들은 친정어머니가 차리시던 제사음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완도 옆 작은 섬의 시댁에서 시아버지 기일에 차려졌던 제사음식을 보고는 크게 놀랐고 가정의례준칙이 참으로 잘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로서는 바닷가 바위 등의 벌레라고만 여겨졌던 수많은 종류의 바다생물들이 모두 상위로 올라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해안가 사람들이 각종 해산물들을 명절 차례음식으로 준비를 하는 것과 달리 지리산의 깊숙한 곳, 전형적인 산촌마을인 우리 동네 부운마을의 음식은 그야말로 산촌다운 다양한 산채가 추석 차례상에 오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물 종류만도 십여 가지나 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추석음식을 차리기 위해 준비하는 여러 가지 식재료 중에 으뜸은 단연 햅쌀이다. 예전엔 이곳에도 다락논이 있어 햅쌀밥을 해서 상에 올렸는데 그 밥은 흰밥이 아니고 노란밥이었다 한다.
아직 나락이 제대로 여물지 않아 상에 올릴 만큼 한 줌만 훑어다가 쪄서 말린 올개쌀로 지은 밥이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맘때부터 인월장에서 만났던 올개쌀(찐쌀)이 그런 속사정을 가지고 있었다. 뒷산에서 주운 도토리를 모았다가 묵을 쑤어 통째로 올리는 낯섬,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알들을 모아두었다가 삶아 예쁘게 오리고 장식해 올리는 여유 등이 묻어나는 추석의 색다른 문화를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께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차례를 간소하게 지내자고 목소리를 키우던 나를 자책하게 된다. 다양한 가정의 음식문화가 존중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편의니 합리를 내세우던 과거를 반성한다.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