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농업 홀대와 농민의 자각

  • 입력 2013.09.06 14:34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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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오늘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 대한 기사가 등장했다. 기초농산물 수매제 실현과 한·중 FTA 저지를 위한 서울역 광장 집회 후 길거리 시위를 한 농민들에 대하여 사법처리하겠다는 서울지방 경찰청 소식이다.

절실한 농민들의 요구에 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과 대안 제시 소식이었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마는, 이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국가가 취해 온 농업정책이나 태도로 볼 때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른다.

한·미, 한·EU FTA에 이어 한·중 FTA 진행에서 보듯이 개방농업은 국가의 시책이다. 지난 8월 말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있었던 ‘2015년 쌀 전면개방’에 대한 국회 대토론회에서도 이미 농민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이 타당한 지 분명한 상황에 대해 정부는 그다지 들어 줄 생각은 없다.

결국 대토론회는 아쉽지만 예상되었던 내용으로 형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형식적으로 예상된 바와 같이 진행됐다고 표현한 이유는 정부 측을 지지하는 이들이 토론회를 통해 조금이라도 정부의 책임을 적게 하고 농민들의 입장도 충분히 들었다고 하는 형식 갖추기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농민의 입장이 다를 때, 아무리 농민들의 주장이 타당해도 정부는 소위 관련 전문가라는 이들을 출연시켜 현란한 전문용어를 남발하게 함으로써 현장에 바탕을 둔 농민들의 건강하고도 상식적인 판단을 혼란스럽게 한다.

농민과 반대되는 정부의 일방적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찬반 양측의 소리를 균형 있게 들어야 한다면서 농민 주장을 정당하다고 인정하기 보다는 마치 논란이 있는 주제인 것처럼 상황을 몰아간다.

이 날 지정토론자로 나온 모 대학의 ㅊ교수만 보아도 그렇다. 통상법 전문가로 언제나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그는 2008년도 미국쇠고기 졸속 개방 논란 때에도 정부측 통상법 전문가로 등장해서 미국 쇠고기에 대한 개방을 하지 않는 나라는 곧 WTO에 제소 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쇠고기 전면 개방은 국제법상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촛불시민의 주장은 잘못됐다고까지 국회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한국보다 엄격한 미국쇠고기 수입조건을 취하고 있는 그 어떤 나라도 WTO에 제소 당하지 않았고, 오히려 개방한 우리나라가 캐나다로부터 WTO에 피소당한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그의 국제통상법 해석이 옳다면 올해 초 일본이 미국과 맺은 30개월 이하 미국쇠고기 수입이라는 타결조건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가 이번 국회 대토론회에 또 등장해서 과거의 무책임한 발언과 유사하게 여전히 정부의 쌀 개방 정책은 국제적으로 어쩔 수 없는 필연적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길게 쓰는 이유는 과연 정부나 사회 기득계층이 사회의 약자 계층에 속하는 농민의 주장을 들어줄 것인가라는 점을 말하고자 함이고, 더 나아가 이런 과정 중에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사법 조치다, 전문가다 등의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논점을 흐리고 위협하며, 때로는 사탕으로 달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불행히도 그동안 농민들에게 그런 방식이 통해왔고 이번 토론회에서도 보듯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요즘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개입에 대한 농민들의 연이은 규탄대회도 있었지만, 농업 관련 세제 개편안 논의나 농업진흥구역 내에 다른 목적시설이 가능하게 하는 농지법 시행령 개정 등 여러 상황에 있어서 농민 입장이 과연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농민들의 정당한 문제제기마저 다양한 방식으로 입막음이 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농민 홀대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공안정국이 조성되고 있는 요즘과 같은 현실에서 농민을 포함한 사회 약자들이 더 이상 정부와 기득계층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회 개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결국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우리 농민들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고, 이는 현재 농민이 처하고 있는 상황과 더불어 정부에 길들여진 우리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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